토요일에는 십년여만에 산에 올랐다. 정확하게는 13, 4년만인듯하다. >.<
워낙에 걷는 걸 싫어하는데다 기회를 찾지 못해 "산이란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 쯤으로 여기고 살았다. 우연한 계기로 와인모임에서 신년회를 산행으로 하자는 제안이 있어 용기를 냈다.
오랫만에 나선 산행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처음 20분 정도 올라가다가 속이 울렁거리고 어질어질해서 (정말 그런 느낌 처음이었다 -_-) 함께 가는 일행에게 미안한 것은 둘째로 치고 정말 포기 하고 싶은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잠시 쉬어 물을 마시고 숨을 고르고 역시 남들에게 폐를 끼칠수 없다는 생각에 한걸음씩 떼어 놓았다. 아픈 다리를 잊으려고 이런 저런 생각의 나래를 펼쳤다.
- 왜 정치하는 분들은 중요한 결단을 해야할 때마다 산으로 가는 걸까.
- 무거운 다리를 움직여 다시 한걸음 내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 지난해를 미디어U의 사업을 정리하며 2008년 계획을 세우는 자리에서 나는 2008년은 암벽등산의 한해가 될것이라고 했었는데.. 과연 우리의 올 한해는 이토록 힘이 들 건가..
그러다가 문득 새해부터 읽기시작한 책이 한권 떠올랐다. 정신과 의사인 M 스캇 펙이 지은 '아직도 가야할 길(The Road Less Traveled)'이다.
오랫만의 산행에서, 그래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그 걸음 걸음에서 이 책을 떠올린 것은 무거운 다리로 산을 오르려 노력하는 한걸음 한걸음이 우리의 삶과 너무나 닮았음을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피하지 말고 부딪쳐서 오르자'는 마음을 먹게 해주었다.
아마 정치인이든, 혹은 일반인이든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이 산을 찾는 것은, 우리 삶에서 만나는 고통의 크기를 직접 느끼고 (사실 '삶의 고통'은 많은 경우 정신적인 것들이 많을 터이므로 그것을 '실체'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것같다)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를 얻기 위함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힘들었지만 어쨌든 목표했던 봉우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누군가 이렇게 고통스럽게 올랐다고 엄살을 떤 산이 지리산이나, 한라산은 고사하고 북한산도 안되는 청계산이었다는 사실을 듣는다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3년만의 산행은 그 산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내게 삶의 고통을 각성하게 하는데 충분했다.
청계산 매봉에 올라 막걸리 한잔하고(크~!) 내려오는 걸음은 가뿐했다. 내려오는 길엔 자주 산에 오르자는 허풍스런 다짐도 했지만.. 그래도 이번 산행은 꽤 상쾌한 자극이었다.
자 이제 어려움과 마주하고 맞서 부딪칠 용기를 얻었으니.. 세상아!, 내게 오너라.
p.s. 1. 다음에 북한산이나 설악산쯤을 오르게 되면 감탄사로 블로그가 도배가 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도 된다.
2. 그러나 예전엔 나도 산에 꽤 자주 다녔음을 알아 주시길.. 지리산 천황봉에서 일출도 보았다는!
'와인과 치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얼떨결에 마신 바한 오브리옹과 와인셀러 (13) | 2008/01/14 |
|---|---|
| 지름은 또다른 지름을 낳는다. (9) | 2008/01/08 |
| 산에 오르다 (4) | 2008/01/06 |
| 와인과 포도주 (7) | 2008/01/05 |
| 새해 소망 2008 (14) | 2008/01/01 |
| 사이드 웨이(Sideways, 2004)가 좋은 세가지 이유 (8) | 2007/11/1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