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4시 30분 알람소리에 맞춰 잠을 깼다. 겨울이 시작되는 주말의 새벽. 이불속을 박차고 나오기란 특히나 나같은 잠꾸러기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진한 어둠에 덮힌 도시를 빠져나와 초대받은 골프장으로 향한다. 오늘의 무도회장은 용인에 있는 Pine Creek Golf Club.
LA나 샌디에고에서의 골프는 마치 헬쓰 클럽 같다고나 할까. 경쾌한 음악과 남들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있다. 아니 좀 더 편하게 동네 앞 공원에서 조깅하는 느낌이다. 반면 한국에서의 골프는 낭만주의 시대 유럽의 무도회장에 초대된 느낌이다. 좀더 화려함은 있을 지언정, '귀품'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압도돼 골프를 즐길 여유를 잃고 만다.
골프약속은 보통 2-3주 전에 잡힌다. 간혹 일주일 이내에 성급하게 약속이 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런 경우 우리는 "땜빵"이 아닐까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두 달 이후 일정을 미리 잡는 경우도 있다. LA에서 처럼 마음 내키면 당장이라도 가서 티오프 타임이 없으면 기다려서 치는 류의 '캐주얼'함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렇게 격식을 갖춰 예약을 하다보니 골프약속은 절대 깰수가 없는 것이 '사회적 관습'이다. 우스개 소리로 본인 및 직계 사망이 아니면 꼭 지켜야 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한국에서 골프를 치는 것이 벌써 네번째이지만 골프클럽 입구 정문에서 정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하는 아저씨의 깍듯함은 오히려 나를 주눅들게 한다. 고객이라고 해서 거수경례를 받을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클럽 하우스 앞에 도달하니 캐디와 안내원이 내 차 트렁크 앞에 선다. 트렁크에서 골프클럽을 꺼내 주려는 것이다. 폭스바겐의 Cabrio를 타고 다니는 내게는 여간 민망한 순간이 아니다. 내 차는 트렁크가 작아 골프 클럽이 옆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늘 골프장에 갈때는 운전석 옆좌석에 골프 클럽을 넣고 가는 나는 창문을 열고 안내원을 불러서 골프 클럽이 옆좌석에 있음을 외쳐 줘야 한다. (아이고 민망해라).
클럽 하우스에 도착하면 우선 프론트 데스크로 가서 예약한 회원의 이름과 티타임을 얘기하고 싸인을 하고 (도착했다는 표시로) 락커키를 받아 들고 락커로 향한다. 내가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 중 하나는 골프장 갈때 여행가방을 챙겨가는 것이다.(사진 참조) 골프를 마치고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좋은 것이지만, 샤워후 대부분이 '정장류'의 옷으로 갈아 입는 다는 것과, 그걸 위해 여행가방 같은 (이것도 한국의 골퍼들이 들고 다니는 전형적인 골프백을 챙기지 않으면 그 남과 다름으로 인한 주눅듦을 감수해야만 한다) 골프 가방을 챙겨 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여행가방에는 속옷과 골프 복장과는 분위기가 다른 옷, 세면 도구, (여성의 경우) 화장 도구를 챙겨야 하니 사실상 1박 2일의 여행 가방과 다를 바가 없다.
만약 전형적인 골프가방이 아닌, 다른 여행 가방을 들고 갔다거나, 골프 후에도 같은 옷을 입었다거나 할 경우에는 아무도 소리내어 얘기하진 않겠지만 그 눈초리에서 느껴지는 서먹한 관심을 감수해야만 할 것같다. 무도회장에서 스텝 잘 못 밟아 남들과 부딪치는 느낌이랄까.
아직까지도 나는 우리나라의 골프장을 갈 때마다 그 잘 차려지고 잘 구성된 분위기에 취하기 보다는 아주 캐주얼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골프 칠 수 있는 엘에이가, 샌디에고를 그리워한다. 언제나 간단하게 전화 한통화로 티타임을 잡을 수 있는 퍼블릭 코스가 많다는 점은 가장 부러운 부분이다. 꼭 4명의 멤버가 차지 않아도, 심지어 혼자서도 워크인(Walk-in)으로 골프장에 가서 사람이 많으면 조금 기다렸다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칠 수 있는 그 가벼운 분위기가 그립다. 카트는 카트패스로 밖에는 가지 못해 클럽을 한, 두개씩 들고 뛰어 다녀야 한다거나, '경기 운영'을 이유로 퍼팅을 신중하게 못하도록 하는 캐디를 만난다거나 할때면 더더욱, 무도회장을 뛰어나가 격식을 벗어 던지고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그 곳으로 가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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