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애호가들에게 "5대 샤또"는 꿈이며, 동경이다.
와인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술일뿐이지, 무에 그리 '술'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명품을 만들고 등급을 나누느냐 생각 하면서도, 와인의 맛과 깊이는 와인값에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5대 샤또가 갖는 위엄은 무시할 수가 없는 것같다. 한번쯤 마셔보고 싶고, 과연 그 많은 사람들이 그 많은 가치를 부여할 만큼의 의미가 있는지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5대 샤또를 포함한 보르도 여행은 나의 "죽기전에 꼭 해야할 일" 리스트에 올라있을 정도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5대 샤또는 '샤또 오브리옹(Chateau Haut-Brion) 1997'이었다. 오브리옹의 레이블은 평범하다. 하얀 바탕에 금색으로 장식돼 있고, 그림도 평범한 '샤또'가 그려져 있다. (병모양은 일반적인 보르도 보다 곡선이 더해져 부드러움이 강조됐다) 하지만, 역시 명성에 걸맞게 맛은 평범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 느낌이 혀끝에서, 마음에서 되살아나는 듯하다. 오브리옹의 느낌이 기억에서 희미해지기 전에 조금 지났지만, 오브리옹 시음 후기를 남겨 보려 한다.
오브리옹을 잔에 따라 첫 모금 맛을 보았을때, 시큼하고, 탄닌의 묵직하고, 부드럽고, 여러가지 다채로운 맛들이 한 번에 내게 "안녕하세요!"하고 큰 소리로 경쾌하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함께 마신 한 친구는 오브리옹을 '태양의 서커스' 같다고 표현했는데, 그것이 서커스이든, 뮤지컬이든, 콘서트이든 전 출연진이 함께 나와 무대인사를 하며, 마치, '앞으로의 공연을 기대하세요!'라고 얘기하는 것같았다.
처음의 복잡하고 다양한 맛이 조금 시간이 지나니 정돈이 되는 것 같았다. 깔끔하고 정돈된 맛과 향이 번진다. 포도 품종을 블렌딩해서 장기숙성형으로 만드는 보르도 와인의 뛰어난 점 가운데 하나는 포도주가 '정갈한 맛'을 낸다는 점인 듯하다. 마치 흰셔츠에 아르마니 정장을 깔끔하게 입은 느낌이랄까..
그 다음 잔의 오브리옹에선 달콤함이 배어 났다. 체리류의 과일에서 뒷맛으로 남는 달콤함이었다. 그리곤 그 달콤함이 조금 엷어지면서 맛은 좀 더 깊어지고, 정갈함과 편안함과 유쾌함이 조화롭게 살아났다.
같은 와인에서 시간이 지날 수록, 잔을 거듭할수록 서로 다른 맛들이 실제로 전해질 수 있다니! 어느 와인이나 처음 오픈해서 시간이 지나면 맛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깊어지고 변해가지만, 오브리옹은 차원이 다를 정도로 다채로운 맛들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와인을 '사람'에 비유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오브리옹은 분명, 일가를 이룬 거장에 비유할만했다. 하지만 그는 아마, 정치인이나 사상가, 혹은 기업을 일으킨 경제인이라기 보다는 아티스트에 가까울 것 같다. 품위가 있었으나 결코 압도할 만큼 무겁지 않고 부드럽고, 편안하고, 행복한 맛이었다.
오브리옹과 함께 한 것은 "시간여행"이었다. 12년전 - 97년에 딴 포도로 만든 오브리옹은 그 많은 시간, 응축과 숙성의 시간을 견디며 긴 여행을 했을 것이다. 나 또한 IMF로 불안하고 힘들었던 시절을 견디고, 좋은 시절도, 좌절도, 혹은 시련도, 그 순간들을 지나치면서 기쁨도 배우고 시련도 배우고, 참는 법도 깨닫고, 그렇게 숙성해가는 인생의 과정을 거쳤다. 오브리옹이 만들어내는 그 다채로운 맛은, 마치 그런 시간의 파노라마를 장면 장면 보는 것 같았다.
오브리옹이 병속에서 견뎌내고 숙성되었던 그 동안 응축된 시간의 힘들이 내 몸속에서 번지면서 나는 일상에서 잠시 빠져 나와 옛날을 추억하고,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만들어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오브리옹을 만들어낸 그라브의 페삭-레오냥 지역이기도 하고, 내가 살았던 공간이기도 했다. 공간도 섞이고 시간도 섞이며 유쾌하고 감동적인 여행을, 포도주를 마시는 짧은 동안, 경험할 수 있었다.
역시, 와인 한병에 너무 많은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브리옹을 앞에 두고, 이 많은 생각들을 쏟아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에게 그런 시간을 갖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것이 아닐런지...
와인과 치즈 l 2009/03/10 13:54
와인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술일뿐이지, 무에 그리 '술'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명품을 만들고 등급을 나누느냐 생각 하면서도, 와인의 맛과 깊이는 와인값에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5대 샤또가 갖는 위엄은 무시할 수가 없는 것같다. 한번쯤 마셔보고 싶고, 과연 그 많은 사람들이 그 많은 가치를 부여할 만큼의 의미가 있는지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5대 샤또를 포함한 보르도 여행은 나의 "죽기전에 꼭 해야할 일" 리스트에 올라있을 정도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5대 샤또는 '샤또 오브리옹(Chateau Haut-Brion) 1997'이었다. 오브리옹의 레이블은 평범하다. 하얀 바탕에 금색으로 장식돼 있고, 그림도 평범한 '샤또'가 그려져 있다. (병모양은 일반적인 보르도 보다 곡선이 더해져 부드러움이 강조됐다) 하지만, 역시 명성에 걸맞게 맛은 평범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 느낌이 혀끝에서, 마음에서 되살아나는 듯하다. 오브리옹의 느낌이 기억에서 희미해지기 전에 조금 지났지만, 오브리옹 시음 후기를 남겨 보려 한다.
오브리옹을 잔에 따라 첫 모금 맛을 보았을때, 시큼하고, 탄닌의 묵직하고, 부드럽고, 여러가지 다채로운 맛들이 한 번에 내게 "안녕하세요!"하고 큰 소리로 경쾌하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함께 마신 한 친구는 오브리옹을 '태양의 서커스' 같다고 표현했는데, 그것이 서커스이든, 뮤지컬이든, 콘서트이든 전 출연진이 함께 나와 무대인사를 하며, 마치, '앞으로의 공연을 기대하세요!'라고 얘기하는 것같았다.
처음의 복잡하고 다양한 맛이 조금 시간이 지나니 정돈이 되는 것 같았다. 깔끔하고 정돈된 맛과 향이 번진다. 포도 품종을 블렌딩해서 장기숙성형으로 만드는 보르도 와인의 뛰어난 점 가운데 하나는 포도주가 '정갈한 맛'을 낸다는 점인 듯하다. 마치 흰셔츠에 아르마니 정장을 깔끔하게 입은 느낌이랄까..
그 다음 잔의 오브리옹에선 달콤함이 배어 났다. 체리류의 과일에서 뒷맛으로 남는 달콤함이었다. 그리곤 그 달콤함이 조금 엷어지면서 맛은 좀 더 깊어지고, 정갈함과 편안함과 유쾌함이 조화롭게 살아났다.
같은 와인에서 시간이 지날 수록, 잔을 거듭할수록 서로 다른 맛들이 실제로 전해질 수 있다니! 어느 와인이나 처음 오픈해서 시간이 지나면 맛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깊어지고 변해가지만, 오브리옹은 차원이 다를 정도로 다채로운 맛들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와인을 '사람'에 비유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오브리옹은 분명, 일가를 이룬 거장에 비유할만했다. 하지만 그는 아마, 정치인이나 사상가, 혹은 기업을 일으킨 경제인이라기 보다는 아티스트에 가까울 것 같다. 품위가 있었으나 결코 압도할 만큼 무겁지 않고 부드럽고, 편안하고, 행복한 맛이었다.
오브리옹과 함께 한 것은 "시간여행"이었다. 12년전 - 97년에 딴 포도로 만든 오브리옹은 그 많은 시간, 응축과 숙성의 시간을 견디며 긴 여행을 했을 것이다. 나 또한 IMF로 불안하고 힘들었던 시절을 견디고, 좋은 시절도, 좌절도, 혹은 시련도, 그 순간들을 지나치면서 기쁨도 배우고 시련도 배우고, 참는 법도 깨닫고, 그렇게 숙성해가는 인생의 과정을 거쳤다. 오브리옹이 만들어내는 그 다채로운 맛은, 마치 그런 시간의 파노라마를 장면 장면 보는 것 같았다.
오브리옹이 병속에서 견뎌내고 숙성되었던 그 동안 응축된 시간의 힘들이 내 몸속에서 번지면서 나는 일상에서 잠시 빠져 나와 옛날을 추억하고,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만들어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오브리옹을 만들어낸 그라브의 페삭-레오냥 지역이기도 하고, 내가 살았던 공간이기도 했다. 공간도 섞이고 시간도 섞이며 유쾌하고 감동적인 여행을, 포도주를 마시는 짧은 동안, 경험할 수 있었다.
역시, 와인 한병에 너무 많은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브리옹을 앞에 두고, 이 많은 생각들을 쏟아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에게 그런 시간을 갖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것이 아닐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