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repreneur가 박수를 받는 세상이다. 그렇담 과연 이 단어도 어려운 entrepreneur란 누구인가? 기업을 창업한 사람은 당연히 이 범주에 들것이다. 반드시 회사를 창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뭔가를 스스로 고안해내고 만들어낸 사람들, 특히 환경의 어려움을 잘 극복해낸 사람들에게도 이같은 칭호가 붙여진다.
내 이력서를 본 사람들은, 서슴지 않고 내게 이 일종의 '벼슬'과도 같은 호칭을 불러준다. 본의 아니게 두 번의 회사를 창업한 경험 때문이다. 불행히도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두 회사는 큰 성공작은 못되었다. 모두 회사의 지분을 일부 팔았으니 entrepreneur에게 나름 중요한 전략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exit'도 실행한 셈이었으나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요, 엄청난 명예를 얻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래도 '기업가 정신'만은 인정을 해준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홀로 남겨진 정적뿐인 두려움을 이겨내고 무언가를 만들어 낸 데 대한 보상이 아닐까 싶다.
1996년 8년여의 기자생활을 접고 나는 홍보대행사 드림 커뮤니케이션즈(Dream Communications)를 설립했다. 1996년 12월 초, 여의도 서쪽 한강변의 한서오피스텔에서 책상과 의자 각각 3개를 들여 놓고는, 빈 공간에서 망연자실했던 그 저녁의 막막함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르바이트생까지 3명으로 시작한 회사, 아무 것도 없이 달랑 책상 3개 놓고 나는 문득 내가 도대체 무얼 하려는 건지 모르겠을 만큼 명해졌다. 기자로서 홍보대행사 사람들을 만난 적이 몇 번 있기는 했지만, 홍보대행사에 무얼 갖춰 놓아야 하는지, 어떻게 고객을 모으고 어떻게 서비스해야 하는지, 솔직히 정리된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내가 기자로서 가지고 있었던 경험의 안섶을 들춰보고 맞춰가면 되겠지 싶은 막연함 밖에는 없었다.
내가 '기업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막막함을 '일을 저지른' 후에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날 오피스텔에서 혼자 남겨진 그 두려움을 사표를 쓰기 전에 추론해내는 명석함이 있었던 들 나는 아직도 기자를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두번째 미국에서 MBA를 마치기 전, 엠투고라는 모바일 컨텐츠 비즈니스를 시작한 후에도, 함께 창업한 웨슬리의 누님 변호사 사무실 한 켠을 얻어서 시작을 했었는데, 그 사무실에서 홀로 앉아 그 막막함을 느낀일이 있었다. 웹사이트 오픈 예정일은 열흘 쯤으로 다가오는데, 아무도 야근따위 신경 쓰지 않고 정시 퇴근해 버린 어느날, 괜히 나 혼자 사무실에 앉아 멍청하게 주체할 수 없는 두려움을 삭이지도 못하고 떨고 있었다. 그 떨림 역시 아직도 내 세포들까지 속속들이 기억해낼 수 있다. 그 역시 회사를 만들기 전에 느낄수 있었던 들, 나는 미국에서 그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두려움은 적막 속에서는 없어지지 않는다.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고 사람들도 만들고, 머리 속에 있는 것을 꺼내어 무언가 해보고, 부딪치고, 깨지기도 하고, 가끔씩 운 좋아, 성과도 얻고, 그리하여 드디어 뭔가 해냈다는 작은 안도감도 몇번쯤 느끼고, 그러면서 서서히 엷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끝내 극복되지는 않았다. 내 경우에는. 주기적으로 찾아와 나를 의기소침해 지게 했다.
또 몸을 움직여 조금 벗어나고, 또 두려움을 느끼고, 벗어나고... 그렇게 숨박꼭질을 여러번 한 후에야, 그 정체를 알게 되고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도 익숙하게 된다.
그것이 세상과 부딪쳐 깨지면서 조금씩 배우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사춘기를 벗어나는 것,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인이 되는 것, 가정의 보호를 벗어나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정을 스스로 꾸리는 것, 다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비록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어도 나는 두 번의 용감무쌍한 시도가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켰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오늘의 나를 키워냈음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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