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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롱테일의 법칙'을 존경한다. 법칙을 존경하다니, 정말 이상한 표현이지만 그만큼 그 아이디어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내가 처음으로 책에서 '롱테일의 법칙'에 대해 알게 됐을때 정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조금 과장하자면, 대학교 1학년때 선배로부터 '계급혁명의 당위성'류의 얘기(386세대 이므로!)를 들었을때와 비슷한 충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전까지는 80대20의 법칙이 지배적이었다. 상위의 20%가 전체 가치의 80%를 차지한다는 것은 상당히 귀족주의적인 법칙이 아니던가. 20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 혹은 부류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개개의 가치는 비록 낮더라도 하위의 80%가 전체 가치를 좌우한다는 상당히 민주적인 '롱테일의 법칙'이 등장한 것이다. 그야말로 무한한 개방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인터넷이 만들어낸 성과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문득,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오늘 하루 내가 '행복'을 느꼈던 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것은 물론, 오늘 하루 내가 왜 이렇게 고단하게 살고 있을까 하는 회의에서 출발하여, 그렇다면 과연 내가 행복을 느끼고는 있나, 나의 행복지수는 얼마나 되나, 뭐 이렇게 사고가 발전을 했던 것 같다.

대략 깨어있는 시간을 17시간으로 보았을때 하루를 살면서 우리가 느끼는 행복지수는 얼마나 될까. 그것은 진짜 짤막한 시간일 뿐이다. 아주 평범한 일상이라면 친구와 정담을 나누었던 전화 한통화 4분 20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흐뭇해했던 20여분, 동영상 사이트에서 타짱 보며 박장대소 하였던 2분 32초. 글쎄, 한창 연애를 하는 친구들이라면 연인과 함께 있는 한 두시간 정도의 제법 긴 '순간'들이 포함될 테지만, 오래된 연인이라면 그것도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고작 몇 분, 몇 십분 정도인 시간의 단편들이 나의 일상을 이끌어 가는 행복 지수를 구성한다.

행복이라는 느낌은, 막히는 출근길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엑셀과 브레이크를 반복해서 밟는 행동과, 머리 아픈 회의와, 이쪽 저쪽 걸어 다닐때, 점심 먹고 이닦을때, 굳이 행복 지수를 붙이자면 0을 조금 웃돌 그런 많은 시간들이 모여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상은 오히려 행복이라는 환한 햇살같은 느낌을 빛바래게 할 뿐이다. 행복지수에는 불행하게도 '롱테일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80대 20이라는 팔레토의 법칙도 부족하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스키니 팔레토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95대 5의 법칙 쯤 될 듯하다.

그렇게 넓게 번지지 않고 로얄젤리 처럼 응축되어 있기 때문에 행복이 더욱 빛이 나는 걸까. 인터넷 혁명과 같은 그 어떤 혁명의 물결이, 그 어떤 기술의 진보가 우리의 행복지수를 롱테일에 맞게 대폭 넓혀 주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재밌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웃으면서 접을 수 있을 듯하다.
와인과 치즈 l 2006/12/12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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