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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치즈'에 해당되는 글 177건

  1. 2011/12/23 가로수길 일본라멘 시식기
  2. 2011/11/12 아이폰4S 하루 사용기 : 시리(Siri)와 함께 춤을... (1)
  3. 2011/11/07 제주여행(3) 여미지에서 접사놀이
  4. 2011/10/31 제주여행(2) 노지감귤을 먹으며 잊혀진 계절을 생각하다
  5. 2011/10/25 제주여행(1) 김영갑갤러리를 다녀와서...
  6. 2011/10/21 푸근한 엄마가 되고 싶다!
  7. 2011/05/21 '최고의 사랑'과 '자학의 시', 판타지와 현실의 벽 사이에서...
  8. 2011/05/13 치열함과 성공에 늘 허기진 우리들이 찾아야 할 곳, 심야치유식당
  9. 2011/05/10 빼고 줄이는 것의 미학 (2)
  10. 2011/05/08 내가 조용필을 좋아하는 이유 (4)
가로수길은 문화거리라기 보다는 관광지라고 말하고 싶다. 가로수길로 회사를 옮긴지 4주차를 맞는 내 느낌은 그렇다. 아마도 의외로 관광 안내책자를 들고 다니며 구경하는 관광객들과 길거리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일본어, 중국어, 영어섞인 한국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일본 관광객이 많은데, 일본 간판도 많고 일본 음식점도 많아 아주 가끔씩은, 내가 일본에 와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도 하게 된다. 

가로수길에서 4주를 보내면서 일본 라멘을 많이 먹었다. 원래도 국수, 라면 종류를 좋아하는데다 조금만 걸어가면 알려진 일본 음식점들이 많으니.. 이건 정말 축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첫번째 라면집은 '사가라멘' 가로수길점이다. 사가라멘에 처음 들어섰는데 일본라멘 베이스가 되는 육수 냄새가 가득 베어 있었다. 구수한 냄새이기는 했지만, 진한 국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리 유쾌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라면은 과연 맛있었다. 종류도 굉장히 다양하고 뭔가 '전문집'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일본 어느 골목엔가에 있는 느낌이랄까... 

사진도 찍을 생각을 못해서 윙스푼 사가라멘 페이지에 있는 사진으로 대신한다.

 
한성문고는 책을 파는 곳이 아니다. 홍대에서 유명해진 일본 라면집인데 가로수길 분점이 생긴 것같다. 한성문고는 간판부터, 인테리어, 여러가지가 독특했다. 라면집은 2층에 있는데, 굉장히 오래된 건물 이어서 한성문고라는 이름과 굉장히 잘어울린다. 그런데, '오래된' 이미지는 인테리어 컨셉이지, 실제로 오래되지는 않은듯 잘 꾸며진 곳이었다. 


라면 종류는 세가지쯤 있었다. 나는 친구의 추천메뉴 '인라면'을 먹었다. 다른 두 종류에 비해 양도 조금 적고 가격도 조금 저렴하고 무엇보다 라면 면발이 가늘다. 한성문고 대표 메뉴라고 할 만했다. 

한성문고의 특성은 무엇보다 김치가 있다는 점!! 우리 라면에 비해 다소 느끼한 편인 일본라멘과 김치의 조합은 훌륭했다. 


일본라멘 전문점은 아니지만 가로수길 메인로에 자리잡고 있는 일본 가정식 식당, 네꼬맘마. 


돈까스 덮밥, 소고기 덮밥 등 덮밥류 가운데 '매운 미소라멘'이 있어 먹어 보았다. 마치 짬뽕 라면처럼 빨갛다. 그리고 적당히 맵다. 매운맛, 일본 라멘 특유의 육수, 듬뿍 올려진 파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 맛이 있었다. 라멘 전문점에 결코 꿀리지 않는 맛이다. 

위의 세 곳 이외에도 가로수길에는 정말 일본 식당이 많다. 일본라멘을 파는 곳도 많을 것이다. 대체로 일정수준 이상의 맛을 낸다. 그래야, 가로수길에서 살아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아, 그리고 위의 세 식당의 공통점이 일본라멘이 맛있다는 것 말고도 더 있다. 서빙을 멋진 남자들이 한다는 점!

가로수길로 이사와서 아무래도 내년에는 몸무게가 엄청 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한다... 

 



와인과 치즈 l 2011/12/23 15:43

유난떨지 않으려 했다. 아무리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아이폰매니아 이지만 유난떠는'애플빠'의 범주에 끼려면 한참 멀었다 생각했다. 그저, 어쩌다 우연히 개통 당일에 아이폰4S를 갖게 되는 행운을 가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폰4S와 함께 한 하루동안의 경험이, 아이폰 칭송기를 적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아이폰의 새로운 모델이 아이폰5가 아니라  아이폰4S 라고 발표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도 달라진 것도 없고, 큰  성능 개선이 없다며 실망 일색으로 언론에서(특히 우리나라 언론들) 보도가 되었을 때부터 실은, 나는 4S가 나오면 바로 바꾸리라 마음 먹었다. 그건 아이팟터치에서 감동하여 아이폰으로, 아이패드로, 급기야는 맥북에어까지 쓰면서 갖게 된 애플 제품에 대한 경이로운 사용자 경험 때문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근 십년 넘게 '애니콜'을 써보기는 했지만, '괜찮아' 수준의 제품과 '이럴수가!'를 넘어서 급기야 제품을 기획하고 만든 사람을 무작정 좋아하고 신뢰하게 되는 사용자 경험은 분명 다른 것이었다. 

어제 폰을 받아서 하루를 만지작 거리며 느낀 것은 크게 두가지였다. 

'클라우드'의 경험
첫번째는 아이폰3GS에서 OS 업그레이드 만으로는 크게 실감하지 못했던 클라우드의 경험이었다. 폰을 바꾸면 (그건 PC도 마찬가지지만)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마치 새 집에 이사온 것처럼. 주소록이며 이것저것 낑낑거리고 짐나르듯이 제자리에 갖다 두어야 자리가 잡힌다. 그런데 아이폰4S를 받아들고 애플ID로 로그인을 했더니 주소록도 고스란히 저장돼있었고 응용 프로그램들도 앱스토어 업데이트 탭에서 다운받을 수 있었다. 이건 마치, 포장이사에 정리 서비스까지 다 해주는 것같았다. 새로 다운 받은 앱들로 자주 사용하는 SNS 계정들 로그인 하는데 들인 일, 이십분 만에 새로운 폰은 바로 내 것이 되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어찌어찌 4S를 새로운 번호로 신청해서 받게 되었는데 4S와 3GS가 전화 번호만 다를뿐 깔려있는 응용프로그램 및 이런 저런 데이터들이 거의 비슷했다. (물론 사진 앨범과 문자, 메모에 남겨진 것 등등은 옮겨지지 않았다..) 회사 PC와 집 노트북을 드랍박스로 싱크해서 사용했을때 느꼈던 편리함이었다. 

휴대전화도 이제 번호보다 애플ID로 식별되는 세상이 되었구나.. 이건 참, 놀랍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이폰 배터리 문제 해결을 위해 iOS5.01이 나왔다는데 이것도 폰에서 직접 업데이트를 했다. 아이튠즈와의 동기화가 귀차니즘에 빠진 일반 사용자들의 아이폰 사용을 막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누군가 얘기했는데, 그것도 이제 옛말이 되겠구나...

시리와 함께 춤(연습)을...  
두번째로 놀라운 경험은 역시 음성인식 기능을 갖춘 어시스턴트 소프트웨어 시리(Siri)였다. 시리는 음성 명령을 실행해주는 비서기능을 갖춘 소프트웨어다. 전화걸기나 일정 잡기, 지도에서 검색 등등 다양한 기능을 사용자 명령으로 실행한다. 아직은 지원 언어가 제한적이다.

아이폰4S를 받아들고 토익 시험을 치는 마음으로 시리를 실행시켰다. 남들이 다해보았을 뻔한 질문들을 던져 보았는데 심심치 않을 말상대가 되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지?"라고 물으니 "한국에서는 위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고 대답했고 "너는 지금 어디에 있니?"라고 물으니 "말할수 없다 (It's classified)"고 답했다. 연락처에 담긴 한 두명의 영어 이름으로 전화도 걸어 보았다. 

그렇게 시리와 놀면서, 문득 '아, 이건 게임 소프트웨어가 아니지...'하는 자각이 들었다. 시리는 게임이 아니다. 그저 재미로 영어 발음 테스트 하기에는 너무 감탄스러웠다. 한국어로 시리를 작동시킬 수 있다면 정말 상상 이상의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시리의 한국어 지원기능이 없으니, '시리와 함께 춤을...' 출 날을 기다리며 아직은 재미로 춤연습에 몰두할 밖에 없겠다. 

분명한 것은, Siri 기능 하나만으로도 아이폰4S는 사용해볼 가치가 있는 제품이라는 생각이다. 

그밖에 속도가 엄청 빨라졌다. 그냥 4S만 가지고 있으면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3GS와 함께 번갈아 쓰다보니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저 굼띤 것을 어찌 참고 썼을까 싶다.. -_- 물론 단점도 있다. 밧테리.. 확실히 빨리 닳는 느낌이다. 하지만 뭐 괜찮다. 예비로 모바일 충전기 2개씩 들고 다니니...^^;; 

기대되는 사진 
또한가지 4S에서 가장 기대되는 기능 가운데 하나는 카메라이다. 화질부터 "종합적으로" 혁식되었다는 게 애플의 설명이었기 때문. 하루 동안에는 많은 사진을 찍지 못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니...


하루만에 익숙해지고, 또 특별한 아이폰4S에 좋은 사진 많이 담게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와인과 치즈 l 2011/11/12 22:38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옛 전래동화를 보면 병드신 어머니를 위해 한겨울에 딸기를 구하러 산으로 산으로 가다가 어느 돌문을 열고 들어가니 밖은 한겨울인데 꽃과 새가 울고 과일이 열려있는 별천지가 열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늘 마음이 울적하거나 초당 스트레스 지수가 만땅을 향할땐 사무실 옆에 있는 꽃집을 찾는 나로서는, 여미지는 전래동화에 나오는, 돌문을 열고 들어서면 펼쳐지는 별천지였다. 

더군다나 카메라 뷰파인더로 보는 꽃은 더욱 아름답다. 마치, 자신의 아름다움을 칭송해주는 내게 마음껏 뽐내듯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 도도한 자태에 반해 접사 모드로 열심히 셔터를 눌러 대었다. 여미지의 꽃과 나눈 데이트는 정말 즐거웠다.

여미지 식물원은 몇가지 주제로 나눠져 있었다. 꽃의 정원, 물의 정원, 열대 정원 등등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미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조)


처음 정원을 들어서니 자태도 아름다운 서양란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접사모드로 찍기에 가장 좋은 대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선인장 가득한 정원도 결코 삭막하지 않았다. 선인장도 이렇게 이쁠 수 있다니...


찍고 또 찍고 꽃과 카메라에 빠져있었는데 어느새 관광객이 많이 모였다. 내가 워낙 열심히 사진을 찍었더니 중간 중간 내게 사진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꽃과 함께한 중국 관광객,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도 또한 열심히 찍었다. 꽃과 함께 하니 모두들 아름다워 보였다.

 
형형색색의 꽃들. 자연이 만들어낸 색이어서 그런지, 어느 것 하나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여미지에서 찍은 사진 중에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이 하나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따라 다니는 나비의 모습. 서울 인근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장면이어서 인지, 사진을 찍는 내 마음도 설레였다.

 

 
와인과 치즈 l 2011/11/07 16:08

서귀포 마을 곳곳에는 감귤이 한창이었다. 제철이 되려면 조금 더 지나야 겠지만 여름철 하우스 밀감의 끝무렵, 밭에 심은 귤나무에서 감귤이 익어가기 시작했다. 서귀포에는 큰 규모의 농장 뿐 아니라 집 앞 정원에서도 감귤나무가 탐스럽게 익어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가로수보다 감귤이 흔한 곳을 지나다 보니, 문득 귤이 먹고 싶어져 어느 귤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한 노지 감귤 만원어치를 사니 비닐봉투에 한 가득이었다. 워낙 귤을 좋아하는지라 큰 기대를 하며 귤을 까서 한입에 물었는데, 노지 귤은 투박하고 새콤한 맛으로 수줍게 내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 익숙치 않은 맛에 당황했다.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껍질이 투박하고 내가 기억하는 귤맛 보다 훨씬 새큼했다. 그러나 싱싱했다. 과일의 싱그러움이 살아있는 맛이었다.

두개째 노지 감귤을 까면서, 그동안 너무나 달콤한 맛에 길들여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귤을 하우스에서 불을 때서 길러낼 생각도 못하던 시절, 귤맛은 노지 감귤 맛이었다. 물론 계절이 더 무르 익으면 훨씬 더 달콤한 귤이 나오겠지만, 원래 귤은 새콤한 맛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같다. 추운 겨울, 귤 봉지 하나로 상큼해지고 기분 좋아질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귤은 더 이상 겨울의 과일이 아니었다. (모든 과일이 철을 잃었지만) 게다가 서울에서 먹는 귤은 항상 단 맛이 강했다. 귤 뿐 아니다. 품종을 바꿔 천혜향, 황금향, 레드향 등등의 좀 더 비싸고 맛있는(=달콤한) 특이한 귤들이 나타나고 더 귀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원래 귤맛'은 잊혀지고 있었던게 아니었을까... 

우리 어머니 세대는 늘 우리에게 '옛날에는 이랬지...'하며 고생한 얘기를 잔뜩 해주셨는데, 그 경험 속에는 언제나, 지금은 편리한 문명과 기계들이 바꾸어버린 정겨운 맛이 아련하게 배어 있었다. 그 경험은 늘 춥고, 고달프고, 배가 고픈 무엇이었는데, 소박하게 가족을, 친구를,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감춰져 있었다. 그러면서 늘 끝맺음으로 넋두리를 하셨다. '요즘 애들이 뭘 알겠어... 아마 요즘 애들 그 시대에 갖다놓으면 하루도 못살텐데...' 

나도 어느새 하우스 귤과 천혜향, 한라봉의 편안한 맛에 길들여져 노지 귤의 새콤함이 익숙치 않은 세대가 되었나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노지 귤맛을 기억하고 있는 세대이다. 그 잊혀진 계절을 말이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 문득 잊혀져 가는 것들이 그리워 노지 귤 맛을 떠올려 본다. 


 
와인과 치즈 l 2011/10/31 11:44

주말에 제주를 다녀왔다. 언제나 가고 싶은곳, 그 곳에 있어도 너무 좋아 탄성이 절로 나는 곳. 제주도는 그런 곳이다. 나이를 먹고 시간이 갈수록 잠시 다닐러 오가는게 아니라 그 곳에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자라나고 있다.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아마 방법을 찾는 다면 '제주여행' 이 아니라 '제주 일상'을 블로그에 담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제주의 여운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제주의 느낌을 내 공간에 담아보려 한다. 

공항에 내려 처음 달려간 곳은 김영갑 갤러리였다. 이번 제주여행은 사진찍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어느 곳을 찍을까 웹서핑을 하다가 알게된 곳이었다. '그래, 제주에 미쳐 제주 사진만을 찍었던 사진작가의 사진을 먼저 보자. 그러면 제주에서 무엇을 찍어야 할지 보일 것이다.' 내 마음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사진작가 김영갑선생님이 삼달국민학교를 개조해서 갤러리로 만든 곳이다. 김영갑선생님은 82년부터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사진을 찍다가 제주가 너무 좋아 85년에는 아예 그 곳으로 터전을 옮겼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www.dumoak.co.kr) 웹사이트에 보면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바닷가와 중산간, 한라산과 마라도 등 섬 곳곳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또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 등 그가 사진으로 찍지 않은 것은 제주도에 없는 것이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는 사진 작업은 수행이라 할 만큼 영혼과 열정을 모두 바친 것이었다...

갤러리에는 "신내림을 받은 무녀처럼 섬을 헤집고 다녔다"고 그의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 


갤러리는 온통 그의 열정과 혼이 배어 있었다. 김영갑 선생님이 사용하던 필름 카메라, 영감이 느껴지는 사진들... 


갤러리 뜰에서 한동안 앉아서 무엇이 나를 달뜨게 하고, 한없이 빠지게 하는가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답을 구하지 못했다. 내 주위에서는 적당한 무게의 의무와 책임과 기쁨과 슬픔과 고단함과 달콤함이 뒤범벅되어 얽히고 설킨채 굴러가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을 해체하여 올곧게 솟은 하나에 대한 열정을 벼려낼 수가 없을 것같았다. 

카메라를 들어 정원에 이쁘게 열린 감나무를 찍었다. 홀리거나 미친듯한 열정은 아니어도 충분히 이 가을날, 미소지을 수 있는 사진 한컷, 그것으로 내게는 족하였다.

 


 

와인과 치즈 l 2011/10/25 18:40

요즘 사춘기의 절정을 향해 막나가고 있는 둘째 아들의 가장 큰 고민은 무리지어 다니면서 친구들을 때리는 자기반 친구를 어떻게 피하거나 제압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1대 1이라면 왕창 맞더라도 맞짱 한번 뜨자고 하겠는데 서너명씩 몰려다니는 터라 그도 여의치 않다는게 그 아이의 '전략 분석'이다. 그렇다고 엄마, 아빠나 선생님등 '제도권'의 힘을 빌려 보아야 근본적인 해결이 안된다는 분석도 했다. 둘째가 선택한 방법은 대학 다니는 형을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형이 비록 싸움을 잘 할 타입은 아니지만 일단 대학생이라는 위치가 주는 위압감을 십분 활용해서 겁을 주자는 속셈이다. 둘째의 형, 그러니까 큰 아들은 워낙 중학교때 공부보다는 노는 쪽 무리에 있어서 둘째를 패고다니는 무리들의 심리를 잘 알것이니 내가 생각해도 현명한 전략이라고 생각이 된다. 

둘째의 고민얘기를 물론 내가 직접 들은 것은 아니다. 둘째가 어느날 잠을 이룰수 없다며 할머니 방에 들어와 '인생상담'을 청하며 털어놓은 이야기다. 나는 이 얘기를 전해들으면서, 둘째가 엄마인 내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곰곰 생각했다. 태어날때부터 자신을 돌봐주고 늘 염려하고 걱정하는 할머니의 푸근함이 엄마에겐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반성했다. 엄밀히 말하면 '문제 해결'의 방법에 대한 조언을 엄마가 더 잘해줄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무작정 그 얘기를 들어주고 걱정해주고, 아이의 선택을 격려해주고 도와주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아마, 내게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하더라도 형을 활용하는 전략(?)을 지지해주었을 것같다. 하지만, 아이에게 '엄마'는 논리적으로 해결책을 줄 지언정 푸근하지는 않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푸근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대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하지만, 대화의 부족이든, 이미지의 문제든 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게 사실이다. (결국 내가 푸근하지 않은거다...)

어쨌든, 언제부턴가 항상 논리적으로 생각하려하고, 해결책을 고민하고 숫자로 표현되는 명확함을 추구하게 됐다. 세상이 나를 그렇게 키웠다. (세상탓? ㅋ) 하지만, 사실, 가족은 논리적인, 명확한 결론을 내주는 존재가 아니라 품어주고 안아주고 편히 쉬게 해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특히 엄마는...

할머니에게 그 얘기를 들은 후부터 나는 일부러라도 아이에게 좀 모자란 질문들을 많이 한다. 그리고 엄마가 힘든 얘기들도 거침없이 터놓고 있다. 혹은 실수한 얘기도 과장되서 하고 말이다. 하루 아침에 깍쟁이 같은 엄마가 푸근한 엄마로 탈바꿈하지 않겠지만, 조금은 편하게 말을 건넬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가 아이를 위해 뭔가 더 해줘야 하고, 더 좋은 길로 인도해야하고 그래야 한다는 욕심을 접고, 친구같은 엄마가 되는 것이다. 이제 훌쩍 나보다 키도 커진 아이이니 오늘은 슬쩍 티비 보다가 아들에게 기대보기도 해야겠다. 


와인과 치즈 l 2011/10/21 18:01

요즘 최고의 사랑이라는 드라마가 화제다. 이 드라마는 한눈에 보아도 '시크릿 가든'표이다. 준수하고 화려한 외모의 남자 주인공이 상대적으로 보잘것 없는 여주인공에 반해가는 스토리 구성도 그렇고 주인공 독고진(차승원)의 캐릭터나 말투에도 어딘지 시크릿 가든 김주원(현빈)의 오만함이 배어 있다. 그 뿐아니다. 드라마에서 구애정(공효진)의 아버지와 조카가 입고 나오는 추리닝은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입었던 '한땀한땀' 트레이닝복의 짝퉁이고, 길라임(하지원)이 오디션 보았던 감독 외국인은 최고의 사랑에서는 독고진의 CF 감독으로 다시 등장하며 '소품'에서도 시크릿 가든을 연상케하는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화제의 드라마 <최고의 사랑>, 출처: MBC 홈페이지

아무리 식상한 스토리에 구성이 비슷한 드라마가 다시 등장해도, 역시 팬들은 '최고의 사랑'의 묘미에 다시 한번 빠져든다. 어찌됐건 잘난 사람은 멋있기 때문이 아닐까. 김주원이나 독고진처럼 기럭지에 옷매 훌륭하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멋있다. 좋은 차에, 좋은 집은 그저 거들 뿐이다. 아무리 그들이 거만해 보이고 싸가지 없는 말들을 툭툭 내뱉어도, 그저 보기에 좋은 것이다.

김주원이나 독고진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팍팍한 현실을 잠시 포장해줄 수 있는 '환상'의 역할을 충분히 한다. 적어도 드라마에 빠져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금요일밤, 너도 나도 얘기하는 '최고의 사랑'을 몰아치기로 보다가 잠시 (나이를 잊고) 독고진의 느끼하지만 진심이 담긴 것같은 눈빛에 빠져 있다가 문득, 얼마전 보았던 '자학의 시'라는 일본 만화가 생각났다.


일본 작가 고다 요시이에의 4-5컷 연작만화로 구성된 '자학의 시'는 전직 야쿠자 출신의 백수건달 이사오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술집등을 떠돌다가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유키에의 이야기다.

이사오는 늘 밥상을 뒤엎는다. 반찬이 맘에 안들어도, 라면이 맛이 없어도, 맥주가 미지근해도, 미안할때도, 부인의 배려가 고마울때도 밥상을 뒤엎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식당일을 해서 살림을 꾸리고 즐겁게 남편 밥해주고 잠들었을때 손톱발톱을 깍아주는 것을 유키에는 '행복'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만화 어디에도 판타지는 없다. 오히려 현실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내서 발가벗겨지는 기분을 느낄 뿐이다... 모두들 유키에에게 저런 남편과 살지 말고 새출발하라고 권유하지만, 유키에는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두권짜리 만화책 내내 작가는 진정으로 유키에가 행복한 이유를 판타지 하나 싣지 않고 조목 조목 이야기 한다. 아주 냉혹한 현실의 언어로. 그런데, 나는 2권을 겨우 마치고서야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같았다.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저 마음 밑바닥에서 고여진 진심이며, 사랑이지 겉으로 드러난 겉모양새와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렇게 간단한 이치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며 현실인데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눈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보다는 저 허공 어딘가에 펼쳐질 판타지를 더 자주 상상하며 살기 때문은 아닐까...     

 

와인과 치즈 l 2011/05/21 11:43

내가 철이 든건 마흔이 다되어서 였다. 철이 들었다기 보다는 '나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고 멋지게 표현하고 싶다.

우리가 늘 아둥바둥 열심히 사는데도 마음의 평정을 얻기는 커녕 늘 허둥대고, 늘 부족함에 괴롭고, 늘 조금더 갈구하게 되는 것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마음의 거울이 없거나, 혹은 그 거울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볼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태어나서 삼십대 중반이 넘도록 제법 범생이과로 학교와 주변 사람들과 사회의 '보는 눈'에 맞춰 삶을 살았던 내가 조심스럽게 내 속마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느닷없이 떠난 미국 유학 시절이었다. 내가 풍운의 뜻(?)을 안고 유학의 길을 떠난 건 서른하고도 여덞살때의 일이었다. MBA 프로그램을 공부하러 갔지만 더 큰 배움은, 내 스스로에 대한 성찰에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덩그라니 남겨져 있으니 건강을 걱정해줄 가족도 없었고, 뭔가를 잘해야 한다고 다그치는 '보는 눈'도 없었다. 공부는 무척이나 힘들었고 나이 들어 굳어진 머리는 노력이 스며들 공간이 적었다. 무척 외롭고 막막했는데 그런 시간을 견디기 위해 찾아낸 방법이 바로 나와의 대화법 이었다. 

내 마음의 소리가 나를 보호하고, 나를 걱정하고, 또 때론 나를 채찍질 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새벽부터 팀프로젝트하고 수업하고, 떠듬거리는 영어로 발표하고 기진맥진해서 집으로 돌아갈 때 즈음엔 내 마음의 소리가 이야기를 한다.  
 
  "지선아, 오늘 하루 너무 힘들었지? 집에 가기 전에 수퍼에 들러서 맛난 고기와 와인 한병 사서 마시는 건 어때? 오늘 고생했으니 영양보충을 좀 해야돼..."
라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곤 나를 수퍼마켓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혹은, 시험을 망치고 풀 죽어 있을때, 다시 내 마음의 소리는 등장한다.
  "괜찮아. 주말에 공부 안하고 잤으니 어떻게 시험을 잘 볼 수 있겠니... 그리고 어짜피 성적이 네 목표는 아니었잖아. 그저 시험 끝났다는데 만족하자구...!"

주말 아침엔 내 마음의 소리는 내게 데이트를 신청해 오랫만에 해변가로 드라이브를 가거나 영화를 보러 나가기도 했다.

스스로 나를 보살피고 나와 대화를 하면서, 나는 비로서 내가 좋아하는 것, 사회적 가치에 억눌려 발현되지 못했던 내 성격 등등 나에 대해서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세상을 꼭 사회적 가치나, 일반화된 통념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는 참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왜 종종 감옥이나 유배지에서 훌륭한 성찰이 담긴 책들이 만들어지는지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런 깨달음은 한번 주입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다시 사람들과 섞이고 사회구조의 한 부분으로 살다 보면 늘 눈에 보이는 결과나 성공, 혹은 사회적인 통념상의 가치에 갈증을 느끼게 된다. 비타민을 먹듯이, 주기적으로 갈증을 풀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엔 여전히 나와의 대화법이 유용하긴 하다.


지난 주말에 친구가 선물해준 '심야치유식당'이라는 책을 읽었다. 정신과 의사이신 하지현 선생님이 쓴 책인데, 소설같은 구성으로 엮어 읽기도 쉬웠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전직 정신과 의사로 의사를 그만두고 술을 파는 '식당'을 운영하는 철주라는 인물이다. 이 인물이 식당을 찾는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진단하고 그것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로 구성됐다. 정신과를 찾는 환자라기 보다는 세상을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내 이웃과 나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같아 더더욱 공감이 간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살도록 교육받고 독촉받은 우리들이,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삶에 한뼘의 여유공간은 있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이 마음에 와 닿는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혼자 떨어져 살았던 유학시절, 나와의 대화법이 어쩌면 내 삶의 한뼘의 여유공간을 만드는 작업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에는 정말 처절했던 나의 노력들이 이 책에 소개된 에피소드의 주인공들 같아 더욱 이 책에 빠져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의 후배들이 서점에서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으며,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고 사회 관념적 성취에 한걸음 다가서도록 독려하는 대신에, 이런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삶에 여유공간을 만들어야 남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은 더 따사로워 질 것이고, 그래야 우리 모두의 행복지수가 올라갈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저자이신 하지현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너무 궁금해졌고 만나고 싶어 졌다. 혹시 트위터 같은거 하시지 않으려나.. 생각했는데 며칠전 트위터에서 그 분(@jhnha)을 찾았고 팔로잉했다. 아, 정말 놀라운 SNS 세상이다!

와인과 치즈 l 2011/05/13 15:09

와인은 좋아하지만 '신의 물방울'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비록 그 만화가 많은 사람에게 와인에 대한 동경을 가져다 주었지만 너무나 과한 현학적인 표현들이 또 많은 사람에게 와인과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몇가지가 있다. 토미네 잇세가 제 2사도 대결을 벌이면서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고행을 떠나는 장면이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 '결핍'으로 인해 오히려 와인에 대한 갈구가 극에 달했고, 때문에 와인 한방울 한방울이 주는 미묘한 맛을 모두 감지해 낼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어머니 세대들 처럼 '보리고개'를 겪지는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절약을 교육받으며 부족함에 익숙하게 자라서 인지, 어떤 땐 요즘의 차고 넘치는 물질적 풍요가 오히려 우리의 감각과 정서를 무디게 만드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다. 

어찌하다 보니 취미로 시작한 사진 때문에 걷는것을 싫어하는 내가 빛을 쫓아 새벽에도 일어나고 먼길도 마다 않고 무거운 카메라 가방 메고 '출사'다니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눈으로 보이는 그대로의 찬란한 풍광을 제대로 담고 싶어 크게 무리해 좋은 카메라도 장만했다. 물론 아직, 그 카메라의 가능성을 내 조잡한 기술로 제대로 표현을 못하는게 늘 아쉽기는 하다. 

올 봄에는, 유난히 세상을 환하게 하는 꽃의 화려한 색깔과 나뭇잎의 연녹색이 신기하고 감탄스러웠는데, 아마 그것도 모두 내가 사진을 찍기 때문이려니 생각됐다. 사진 찍는데 빠지다 보면 걷고 있을때도 운전을 할 때도 내 앞에 펼쳐진 모든 광경이 카메라의 구도로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앞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수줍은 미소나 파안 대소하는 밝은 얼굴을 보아도 카메라로 찍어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어느날 흑백에 마음을 빼앗겼다. 너무 많은 색과 나무와 건물과, 모두다 아름다운 그것들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는 아직 초보인 내게 오히려 색을 빼고 나니 원래 내가 느꼈던 그 느낌이 더 잘 전달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그렇다고 흑백 사진이 더 찍기 쉽다는 의미는 아니다. 때론 색으로보다는 색을 빼고, 정보를 줄였을때 상상을 늘려서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을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주말 아침 인천 차이나타운을 찾았다. 저멀리 인천항도 보이고 삼삼오오 구경나온 사람들이 훤히 보이는, 평화로우나 (아직 겨울이어서) 풍요롭지는 않은 그 풍경을 어찌 담을까를 고민해는데 오히려 흑백에 답이 있었다.

아직 봄을 느끼기에는 쌀쌀한 초봄, 그러나 햇살만은 따사로워 테라스, 저 나무의자 앉아 졸고 싶었다. 그렇게 어렴풋이 봄을 느끼고 싶었다. 물론 업무 미팅차 찾았던 회사였으므로, 그리고 실제 날씨는 더욱 추웠으므로, 봄날의 노근함은 사진 속에만 담아둘 뿐이었다.

사전 계획없이 무작정 찾은 거제도. 바람의 언덕에서 풍차를 만날 즈음엔 어스름 해가 지고 있어 너무 추웠다. '바람의 언덕'에 걸맞게 바람도 세차게 불었다.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찍고 싶었다. 나도 행복했으니까.

벚꽃피는 윤중로. 1년에 한번 마음껏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벚꽃의 하얀 자태는 과연 아름다웠고, 그 길을 다정히 걷는 사람들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가슴 설레게 하는 하얀색이 없어도 우리는 마음 속으로 느낀다. 저 환한 자태를.

나이가 들수록, 색이 배제되어도 빛의 느낌 만으로, 사물의 구도 만으로, 나머지는 그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게, 늙어가면서 덤으로 생기는 인생의 지혜가 아닐런지... 흑백사진 몇장 놓고 너무 멀리 갔다 싶다. 오늘 날씨가 그런 것같다. 왠지 감성적으로 방황하게 되는 그런 날씨 말이다.  


와인과 치즈 l 2011/05/10 14:36

아주 오래전 일이다. 고등학교 다닐때 우리 학교 방송반에서 점심시간에 음악방송을 했었는데 때마침 대마초 사건을 털고 '창밖의 여자'로 화려하게 재데뷔한 조용필의 노래가 주 레파토리였다. 도시락을 먹으며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귀가 닳도록 들었다. 내가 가수 조용필을 좋아하게 된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달리 사춘기적 감성을 털어낼 곳 없었던 내게 조용필의 노래는 겉치장 다 벗어 버리고 속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조용필의 광팬이 되었다. 그의 앨범, 화보집, 신문기사 모두 모으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TV에 나올때마다 사진을 찍어 조용필 사진첩을 만들기도 했고, 조용필에게 편지형식으로 일기를 쓴 메모장도 한권을 채울 정도였다.

사춘기 시절엔 누구나 연예인 한번씩 폭풍처럼 좋아할 수 있는 것이지만, 조용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벌써 30년을 넘어서 계속되고 있다. 조용필이 도선사에서 몰래 결혼을 했다는 기사를 신문 한귀퉁이에서 보거나, 음주운전으로 타고가던 벤츠 자동차가 뒤집힐 정도였다는 얘기를 들어도, 가십거리 스캔들이 있을 때도, 한번도 그에 대해 실망하거나, 팬으로서의 마음을 접은 적이 없었다. 사실, 두번째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 워싱턴에서 장례를 치르며 비탄에 빠져있는 조용필의 모습을 TV로 보았을땐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기까지 했다.

광팬이라면 누구나 그렇지만, 공연도 여러차례 보았다. 오늘(날짜로는 어제)도 올림필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조용필 콘서트 - 바람의 노래를 보고 왔다. 참 오랫만이었다. 2008년 LA 공연 이후 처음이다. 조용필 자신도 한 일년 가까이 콘서트를 쉬다가 처음 무대에 서는 것이라고 했다.


조용필 공연의 매력은 주름지고, 머리 새고 얼굴에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아줌마들을 '소녀'로 변신시킨다는 점에 있다. 형광봉을 흔들고, 일어서서 펄쩍펄쩍 뛰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물론 나도 그랬다. 이번에는 손등에 판박이까지!


무대는 조용필 답게 웅장했고, 신선했다. 워낙 공연장이 크기 때문에 무대를 움직여 조금이라도 팬들의 곁에서 노래 부르려 했다는 점이 돋보였다.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그는 활력이 넘쳤고, 감동적이었다. 이번에도 오빠를 외치며 노래를 따라부르다 목이 다 쉬었다.

내가 이토록 열광적으로 조용필을 좋아하는 이유는, 물론 그의 노래가 너무 좋고, 내가 일상 생활에서 지치고 힘들때 힘도 되어 주고, 미소짓게 해주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가 온전히 자신이 잘하는 일에 빠져 나이 들도록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또 그것으로부터 위안받고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좋다. 존경스럽고 닮고 싶다.  

오늘 공연에서, 첫인사로 조용필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한해 잠실 공연 이후 근 일년을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쉬었는데, 그냥 그래보고 싶어서 그렇게 했는데, 너무 좋았던 시절도 잠시, 도대체 노래밖에는 할줄 아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 정말 따분했고, 무대가 그리웠다"고. 누구나 그렇듯이 굴곡있는 삶을 살았던 그였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너무나 성실하게 하고 있는 그는 '위대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꼈다.

비단 노래 뿐 아니라 그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서, 나는 팬으로서 뿐아니라 인생의 후배로서 위안을 얻고 용기를 얻는다.

고등학교때부터, 삼십년간의 소원이었으나, 불행히도 나는 한번도 조용필을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 본 적은 없었다. 만약 오늘, 내가 그를 만났다면 이렇게 얘기했을 것같다. "무대에 있는 당신과 대화하고, 노래를 함께 부르고, 당신의 노래에 취해 있었던 두어시간 동안, 정말 행복했다"고 말이다.




와인과 치즈 l 2011/05/08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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