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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과 사람들'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1/06/20 이 시대의 비저너리(Visionary), 손정의 회장을 좋아하는 이유 (1)
  2. 2010/11/19 '진보집권 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의 소셜(Social) 스러운 맛
  3. 2010/08/03 이지선과 사람들 ③ 몇 안되는 '여자'친구와의 깊은 인연 (2)
  4. 2010/07/03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 (2)
  5. 2010/06/14 이지선과 사람들 ② 내 인생 멘토에게 듣는 코칭 이야기 (5)
  6. 2010/05/27 이지선과 사람들 ① 민서와 동현에게 배우는 꿈과 희망
  7. 2010/05/23 세상을 바라보는 두가지 관점 (2)
  8. 2010/04/16 연애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33)
  9. 2010/04/15 이지선은? (2)

누군가 당신에게 향후 30년의 꿈을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300년의 비전을 얘기하라고 할때, 당황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혹은, 누군가 자신의 향후 30년 비전을 이야기 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무엇이라고 얘기할 것인가? 주변에서 과연 그런 사람을 본 적이나 있는가?

나는 오늘 그런 사람을 보았고 그의 30년 비전에 더위를 식혀줄 빗줄기라도 맞은듯 시원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오늘 정말로 오랫만에 기자간담회에 참석을 했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한국에서 11년 만에 갖는 기자 간담회였다. 비록 기자는 아니지만 간담회에 가게 된 것은 존경하는 기업가이며 트위터 트친(일방적인 팔로잉이긴 하지만)인 손정의 회장이 말하는 향후 30년의 비전을 직접 듣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였다.

손정의 회장의 창업 스토리는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소프트뱅크를 창업한 후 고작 두 명뿐인 직원 앞에서 귤궤짝에 올라서 그가 믿는 IT 기술 혁명이 이루어낼 미래와 소프트뱅크는 그 혁명을 이끌어가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던 에피소드는 신생기업의 꿈과 열정을 얘기할때 단골로 등장한다. 그 당시 손회장의 앞에 있었던 직원은 곧 소프트뱅크를 떠났지만, 그 연설은 손정의 회장의 가슴에 남아 지난 30여년 소프트뱅크를 키우는 나침반이 되고 지도가 되었다. 그렇게 소프트뱅크는 30년간 전세계적으로 800여개 회사에 투자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에서는 세번째로 순익이 높은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창업 30년 시점에서 손정의 회장은 다시 한번, 이번에는 귤궤짝 보다는 좀 더 잘 갖춰진 무대에서, 향후 자신과 소프트뱅크의 길을 밝혀줄 비전을 발표했다. 지난 30년간 IT 혁명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소프트뱅크를 이끌어 왔다면 앞으로 30년, 그리고 또 30년을 넘어서 300년간 손정의 회장과 소프트뱅크를 이끌어갈 믿음은 과연 무엇인가? 손정의 회장은 그것을 '정보기술로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 이라고 정의 했다.

손정의 회장은 소프트뱅크 향후 30년의 비전을 세울때 보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지혜를 모으기 위해 트위터를 시작했는데,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보니 결국 사람들은 외로워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가족, 친구들과 같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발견이 소프트뱅크의 비전에 녹아들어간 것이다.

앞으로 30년간, 혹은 300년간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삶을 보다 풍요롭게 가꾸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컴퓨터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이며,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주는 의미는 그로 인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세상에 있다는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비전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30년간의 비전에서, 구체적으로 소프트뱅크가 해야할 일들은, 물론 지속적으로 IT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손회장은 최근 소프트뱅크가 일본 지진 사태를 겪으면서 재생에너지 분야에도 관심을 갖고 투자를 생각하게 됐는데, 이는 소프트뱅크가 나아가는 방향을 선회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이번 일로 인해 '전기가 없이는 IT 산업의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담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손정의 회장은 '정보기술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다소 장황하고 감상적으로 보이는 비전에 대한 전략에 대해 '전략적 시너지 그룹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것은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많은 기업들의 "동지적인 결합을 통해 정보혁명을 이뤄가는 것"이다. 인터넷의 발전을 주도해온 월드와이드웹에서는 한 두대의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수퍼 컴퓨터가 주인공이 아니라 다양한 기능을 하는 웹서버가 서로 수평적으로 연결구조를 가지며 변화 발전한다. 지구의 생명체도 위대한 한 두개의 개체를 중심으로 발전했다기 보다는 자기 진화를 하면서 발전한 각 계체간의 유기적인 결합과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해왔다. 이런 수평적인, 분산화된 발전 모델이 소프트뱅크가 지향하는 변화 발전의 모델이라고 제시했다.  

누구든지 앞으로 30년을 점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향후 30년의 비전'은 자칫 공허하고 허울좋은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손정의 회장의 30년 계획은 상당히 감동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오늘 손정의 회장의 현재가, 바로 그가 열아홉에 세운 '인생 50년 계획'을 이뤄가는 끊없는 열정의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열아홉에 이런 결심을 했다고 한다. 20대에는 세상에 알려지고, 30대에는 운영자금을 마련하며 40대에는 큰 승부를 걸고 50대에는 어느 정도 비즈니스 모델을 안정화 하겠다는 것이 그의 인생 계획이었다. 20대에 회사를 차리고 30대에 글로벌 비즈니스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40대에 일본에서 보다폰을 인수하면서 이동통신 시장에 뛰어들어 수년간의 적자의 시간들을 견딜 만큼의 '모험'을 감행했고 50대에 비로서 그 모험이 안정기에 들어선 그의 현재가 열아홉에 세운 계획 안에 들어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없다.  

기자간담회가 끝나고 회사로 돌아오면서 왜 우리나라에는 저렇게 담대한 꿈을 꾸는 기업가가 없을까.. 생각했다. 비단, 큰 일을 하는 기업가가 아니라도 그렇다. 왜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나침반이 되고 지도가 되는 비전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그것을 스스로 가슴에 새기려 하지 못하는 것일까. 손정의 회장 덕분에, 아주 오랫만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비전을 가다듬어 보기로 했다. 꼭 그것이 소프트뱅크처럼 거대한 기업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나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정도는 느껴야 하지 않겠나 싶다. 




이지선과 사람들 l 2011/06/20 18:23


나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정말 정치에는 무관심한 층이다. 어쩔수없이 부풀리고 과장하는 정치의 속성 자체가 싫을 뿐더러 선명한 명분을 위해 때로 독선적으로 보이는 정치적 주장들의 톤앤매너가 싫기 때문이다. 그런 고로 소위 '386 세대'로 살아왔고 주변에 '운동하는' 친구를 많이 두었음에도, 정치에는 담을 쌓고 살아왔다. 

그런 내가 '진보집권플랜'이라는 제목부터 정치적인 책을 샀다. 어제 주문한 책을 받고 조국교수의 서문과 앞부분을 읽으면서 책이 지극히 '소셜(Social)' 스럽게 기획됐다고 느꼈고, 바로 그것 때문에 이책의 성공을 예감하게 됐다. 

'친구' 네트워크 기반의 친밀감이 주는 홍보 효과 

내가 애초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내용이 궁금했다기 보다는 저자들과의 '심정적인' 친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조국 교수님은 나보다 학번 위로 학교 다닐때 부터 '지성과 미모'로 주목 받았던 인물이다.(교수님 죄송합니다!)  사실 '서울대 법대 학생'이라는 일반적인 기대치에 어울리지 않게 훤칠한 키와 조각같은 얼굴로 인문사회대 할 것 없이 (조금 과장하자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엄친아의 전형이었으니 말이다. 오연호 대표님도 이런 저런 모임을 통해 알게 됐으며 미디어유 설립에 큰 도움을 주신 분이다. 포괄적인 개념의 '친구'인 두 분이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는, 비록 내가 관심 없는 정치 이야기일지언정 관심을 가질 이유가 충분했다.

조국 교수님과 오연호 대표님은 모두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활발하게 사용하고 계시고 친구도 많은 분들이다. 나처럼 개인적인 친밀감으로 두 분의 대화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졌을 사람이 초기 독자층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만약 소셜 네트워크시대가 아니었더라면, 두 분이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그런 두 사람이 함께 뭉치지 않았더라면 이 책의 초기 관심도는 떨어졌을 것이다. 이 책이 다분히 '소셜' 미디어 환경에 맞게 기획되었다고 생각하는 첫번째 이유이다.


정치, 시사적인 무거운 주제를 '소셜'스럽게 연성화

책을 처음 받고 받은 느낌은, 조국 교수님이 가진 매력을 최대한 활용한 책이라는 생각이었다. 정치, 시사 분야의 책으로는 드물게 책 사이 사이에 조국 교수님의 진지하고, 환하게 웃고, 또 열정적인 표정의 사진들이 들어 있다. 저자가 두 분이니 오연호 대표님과 함께 찍은 사진도 물론 있으나 그럴땐 늘 구도가 오연호 대표님이 책이 접히는 쪽에, 조국 교수님이 바깥쪽에 자리잡고 있다. 

그게 나쁘냐고? 결코 그렇지 않다. 소셜 미디어 시대는 '사람'이 강조되고 대화하는 주체의 인간적인 매력이 바탕이 된다. 외모를 포함해 인상이 좋다면 그 사람이 전하는 전달력은 두배, 세배가 되는 법이다. 두 분의 저자가 나눈 대화는 사실상, 컨텐츠의 매력도로 보자면 그리 높지 못하다. 진지한 성찰과 고민, 정확한 분석과 해결책에 대한 통찰력이 담겼다 해도, 대중들은 굳이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진보집권플랜이 성공하려면 대다수의 대중들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기울여야 한다. 매력도 떨어지는 컨텐츠 (컨텐츠의 질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사회적 성향때문에)를 살리는 방법으로 두 저자의 인간적인 매력을 적극 강조한 (이제까지의 진보스럽지 않은) 대담한 시도에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책을 받고 저자서문과 목차, 그리고 대충 휘리릭 보기 만으로 책소개를 쓰곤 했던 기자시절의 나쁜 버릇으로, 나는 아직도 앞부분만 읽고 책소개를 적는 우를 범하고 있지만, '묻고 답하는' 책의 구성도 관심을 유지시키는 좋은 포맷이다. 두 분 모두 두 남자의 대화라는 서술 양식을 빌려 '까놓고 묻고' '까발려 답하는' 솔직, 담대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정치, 시사 책을 집중해서 읽어 내기란 쉽지 않지만 적어도 질의 응답이라는 양식을 갖췄기 때문에 중간 중간 끊어지는 맛에 훨씬 메시지가 집중되는 효과를 거뒀다.

덧붙여, 트위터를 사용하면서 내 친구들의 대화를 3자적 입장에서 듣는데 익숙하다 보니 더욱 이런 '묻고 답하는' 형식이 부담없이 전달되는 것같다.


트위터를 통한 독자들과의 대화  

책은 초기 부터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의 홍보 전략을 보면 '대화하기'가 핵심이다. 두 저자 모두 독자들과의 대담회 행사를 자주 갖고 있으며 오연호 대표는 트위터에서 이 책에 관심갖는 독자들에게 일일이 답하며 책에 대한 관심 환기, 홍보에 나서고 있다. 비단 이 책을 많이 팔기 위한 노력일 뿐 아니라 이 책의 절실한 메시지 '진보집권플랜'의 홍보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듯 보인다.  

주말에는 기필코 이 책을 읽을 생각이다. 적어도 내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서 알아왔던 두 분의 저자가 수십년을 한 길을 걸었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늘 치열하게 노력했음을 알아주는 포괄적 친구로 두 사람이 목청껏 나눈 얘기들을 귀담아 들어야 겠기에.

* 덧. 책이 뜨고 문득 몇년전 조국 교수님이 보내준 '형사법의 성편향'이라는 책이 기억나 찾아 보았다. 솔직히 그 책을 받을땐 도대체 왜 내게 이 책을 보내주었을지... 이 책이 내 삶의 어디에 필요할지 이유를 몰랐으나 오늘 이렇게 조국 교수님께 책 선물 받았음을 자랑하게 될줄이야... -_-


이지선과 사람들 l 2010/11/19 14:25


Prologue
고백하건데, 사실 저는 주위에 여자친구들이 별로 없습니다. 대학대까지 몇 남아있던 친구들이 시간이 갈수록 결혼하고 아이 가지면서 집 중심으로 살다보니, 가끔 전화는 해도 만나기 어렵게 되었고 일부 해외에서 자리잡은 친구들도 있다 보니 점점 그 수가 적어졌습니다.
사회생활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시다시피 기자로 오랜 세월 훈련 받다보니, 본성과는 다르게(?) 반 머슴아가 되어 갔죠. 저는 요즘도 사고방식이 '아저씨'스럽지, 결코 '아줌마'스럽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제 또래의 아줌마들 많은 자리에서는 주눅이 들어(마치 40대 아저씨가 그런것처럼) 말도 제대로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얼마전까지 우리나라의 유명한 대안학교인 이우학교 사무국장으로 일하다가 지금은 잠시 미국행을 준비하고 있는 민순기님(평소는 '아줌마', 혹은 '언니'라고 부르지만...)은 제게는 몇 안되는 여자 친구입니다. 미국행을 앞두고 송별회(?) 겸해서 수다를 떨어 보았습니다.

정많은 선배는 '육아'를 택했다

순기언니를 처음 만난 것은 전자신문에서 였다. 전자신문 6기로 입사한 내게 '3기'의 타이틀을 가진 '민순기 선배'는 그야말로 하늘같은 존재 였다. 하늘 같은 선배와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전자신문은, 적어도 내가 입사했던 88년만 하더라도, 마치 대학 동호회 스러운 정겨움이 남아있는 조직이었다. 선후배간에 서로 챙겨주고, 놀러 다니고 개인적인 고민도 자주 나누는.. 그런 곳이었다. 분위기 좋은 회사에서 만난 덕에 민언니와 난 함께 탁구치러 다니고 술마시러 다니고, 또 지리산 종주도 다니며 상당한 우애(?)를 쌓을 수 있었다.
 
당시 사회 생활을 시작한지 불과 몇년 되지 않은데다 결혼해 아이까지 둔 여성으로써 우리는 줄곧 '전업주부'의 여유로운 삶을 꿈꾸었다. 아침에 원두커피 내려 마시며 음악 들으며 책읽을 수 있는 '잉여로운'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것이 우리 잡담의 주요 주제 였다. 직장생활과 가사 노동(아무리 최소화한다고 하여도..)을 해내야 하는 어려움, 거기에 아들 키우는 고단함까지 고민 거리가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여유로운 삶을, 동경하였을 지언정, 결코 용기내어 선택하지는 못했는데, 민언니는 나와 달랐다. 지방대학으로 발령받은 남편따라 제천으로 이사가며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의 길을 택했다. 더욱 부러운 것은 이쁜 딸도 낳았다. 한번은 전자신문 여기자들끼리 제천으로 내려가 그녀의 전업주부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우리가 점심 먹고 수다떨며 동경하던 '꿈같은 생활' 그 자체였다. 물론 그 안에서도 왜 어려움이 없었을까 만은, 어쨌든 민언니는 대단히 행복해 보였다.


다시 만나 드림 커뮤니케이션즈의 동지로..

그러던 민언니와 다시 만난 것은 96년. 둘째 아이까지 어느 정도 키워놓은 그녀는 이번에는 다시 용기를 내어 남편과의 '주말부부' 생활을 감수하고 아이들과 함께 서울권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그렇게 할 일을 찾다가, 마침 창업을 앞두고 함께 할 사람을 찾고 있던 나와 만났다.

기자를 했던 경험 이외에는 홍보일을 해본 적 없던 우리 둘은 '다른 방법'으로 회사를 세팅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선후배에서 창업 동지로 함께 일했던 그녀와 나는 대단히 궁합이 잘 맞았다. (물론 민언니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지만...) 둘은 공통점이 있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하루 하루 무언가를 배운다는 뿌듯함을 추구하는 것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당장 눈 앞의 이익 보다는 좀 더 명분있고 멋진일을 해야한다는 기본적인 방향을 공유했기 때문에, 회사의 방향에 대한 커다란 이견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우리 둘은 성격면에서는 서로 달랐다. 일상적인 면에서 나는 굉장히 성격이 소심하고 생각이 복잡하고, 처음 본 사람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고, 어떤 일에 대해 몇 수 앞을 보고 마음이 놓여야 다음 진도를 나갈 수 있는 성격이었던 반면, 그녀는 낙관적이고 사람들과의 친화력이 좋았다.

드림 커뮤니케이션즈 직원들은 사장인 나는 늘 차갑고 긴장하게 만드는 존재로 느껴졌을 터이고 '민이사님'은 편하게 집안 얘기 터놓을 수 있는 푸근한 존재였을 것이다.

민언니와 나, 그리고 아르바이트생 세명이 시작한 회사는 3~4년 만에 40명이 넘을 정도로 규모를 키웠다. 말은 쉬워서 '빠른 시간에 고속성장'이라 얘기할 수 있겠지만, 성장까지의 순간 순간의 아픔과 어려움은 늘 있었다. 심지어 회사가 매출이 늘고 고객이 늘어나는 순간에도 늘 고민거리와 우리가 풀어내야 하는 숙제는 한아름이었다. 그런 시간들을 함께 했으니 언니와 나는 흡사 전쟁을 함께 겪은 전우의 우정에 버금가는 신뢰와 정을 쌓았을 것이다. 

2002년 내가 만든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러 가겠다고 했을때, 아마 민언니는 누구 보다도 충격과 당혹스러움을 느꼈을 터이지만, 결국은 내 용기를 격려해주었다. 속으로는 약간의 배신감(?)과 혼자 남겨지는 것같은 두려움도 있었을 테이지만 말이다.   

"아들 둔 죄"를 호소하는 엄마들의 넋두리

한때는 매일 얼굴 맞대고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하던 사이었지만 민언니와 나는 서로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지 어언 십여년이 다 되어간다. 그럼에도, 지금도 늘 안부를 챙기고 몇달에 한번씩은 밥 먹는 자리를 꼭 만들어 얼굴을 확인하며 산다. 

신문사 선후배와 함께 회사를 일구어낸 동지라는 유대감 이외에도 그녀와 나는 또다른 험난한 길을 서로 위안하며 넘겼기 때문이다. 큰 아들이 중학교 2, 3학년을 거치며 한창 반항기에 접어들어 갖은 '사고'를 칠때, 아들 키우는 어려움을 함께 나눈 사람도 민언니였다. 우리 애보다 한살 위였던 언니의 아들도 성격이 예민하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을 하지 못했다. 그나마, 대안학교인 이우학교를 다녔는데 공부는 둘째치고 약간의 우울증으로 괴로워 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아이와 언니의 아이는 서로 아주 다른 이유로 엄마의 속을 썩였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우리의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들을 둔 엄마가 갖는 안쓰러움과 속상함은 이루 표현을 하지 못한다.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면 나누기도 어려운 괴로움 이었다. 우리는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메신저로 서로 아들들의 상태를 이야기 하며 서로를 위로하곤 했다. 그러면서 늘, '풀빵장사를 하더라도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부모의 욕심 때문에 하기 어려운 원칙들을 다시 마음 속에 새기곤 했다. 


이제 언니의 아들도 마음을 잡고 일본 유학을 시작했고, 민언니는 부군과 함께 안식년 휴가를 떠난다. 새로운 곳에서의 경험이 또 다른 희망과 즐거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랬다. 물론 한국에 있을 때에도 많아야 일년에 서너번 밖에는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먼 곳으로 간다고 하니,문득 내 주변에 여자친구의 희소성을 느끼며 그녀의 소중함이 백만배쯤 실감이 났다.



이지선과 사람들 l 2010/08/03 08:07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하루 하루를 산다.

바다 앞에 서서 나는 입밖으로 내뱉지 못한 가슴속 추억과, 깊숙한 곳에 감춰진 욕심과 늘 머리 속을 맴도는 바램등을 눈 밖으로 펼쳐 보이며 단숨에 저 멀리 일렁이는 파도 한자락까지 닿는다.

파도는 펼쳐진 내 추억과 욕심과 바램을 겹겹이 되접으며 점점 내게 다가오지만, 잔잔한 물결로 다가오든, 거친 파도 일렁이든, 결국에는 내 발끝에 닿지 못하고 부서진다.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

그리하여, 다시 나는 먼 데로 눈길 돌린다. 저 멀리서, 다시 내게로 추억의 자락을 겹겹이 접으며 다가오는 파도를 꼭 언젠가 내 손에 담을 거라 믿으며 다시 그리움을 키운다.

그렇게 반복하며 하루 하루를 접으며 살아간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 나이가 되었지만, 그러나 채워지지 않아도 그리움을 포기할 순 없다. 그렇게 살아가라 배웠기 때문이다.

이지선과 사람들 l 2010/07/03 09:00

Prologue
누구나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오늘의 나'가 있기까지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유를 모르게 특별히 나에게만 까달스러웠던 상사, 좀처럼 칭찬에 인색했던 윗사람, 혹은, 별 일도 아닌데 과분한 칭찬을 하며 기를 살려주었던 선생님까지... 문득 눈 앞에 떠오르는 그 얼굴들, 그 표정들이 바로 내가 성장하는데 양분이 되고 빛이 되고, 음악이 되었던 것같습니다.

특별히 많은 시간을 함께 일하며 '내 인생 멘토'라고 익숙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분이 제게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이규창 선배입니다. 대학 학번으로 2년 선배이시며, 전자신문, 조선일보, 한국일보에서 함께 일했던 분이죠. 이제 그 분이 인재를 키워내는 '코칭(Coaching)'을 업으로 하고 계십니다. 내 인생의 멘토에게서 누군가에게 멘토가 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들어 보았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이규창 선배를 만난 것은 대학때였다. 83학번으로 입학했으나, 1학년은 계열별로 수업을 들었고 영문학과에 진급한 것은 2학년때인 1984년이었다. 이규창 선배는 81학번 졸업반이었다. 이제 생각하면 나이로는 여전히 선배도 어렸지만, 당시 대학 2학년 학생에게 졸업반 "형"들은 하늘이고 법이었다.

이규창 선배는 늘 빨간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나름 묵직한 몸매(?)에 빨간 셔츠를 입고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규창 선배는 당시 비록(?) '아크로폴리스급' 운동가는 아니었지만, 대단한 선동가였다. 신문에 날만한 시위를 주도하지는 않았지만, 탁월한 논리와 언변으로 속시원하게 후배들의 고민거리를 정리해주는 그런 스타일 이었다.

학교 다닐때 이규창 선배와의 인연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선배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겨울 방학때 '술한잔 사주기를' 청하는 나를 불러 병맥주를 사준 '사건'이었다. 84년 당시에는 학생들이 맥주를 마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실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법으로 금지되어 시간당 비용이 올라갔던 '몰래과외'로 한달에 웬만한 샐러리맨들의 월급 보다 높은 30, 40만원을 버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다만, 학생이, (민중들은 헐벗고 굷주리는데) 값비싼 맥주를 먹는 것에 대한 암묵적인 비난이 너무 거세었기 때문이었다. 몰래과외 월급 탄날 학교 동네를 벗어나 맥주를 마시며 기분 내어 본 일은 있어도 '선동가' 선배에게, 그것도 신림 4거리 한복판에서 맥주를 얻어 마신다는 것은, 나름 충격적으로 오래 기억되고도 남을 사건이었다. 그날 정확하게 이규창 선배와 나눈 대화는 기억에 남지 않지만, 병맥주를 (아마도 많이) 마셨고, 그 술집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심수봉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만은 기억에 남는다. '이념'이 '생활'에 녹아들 수도 있구나 하는.. 특이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고는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기자'로 일했던 8년간의 대부분을 이규창 선배와 일했다. 전자신문 - 조선일보 - 한국일보로 옮겨가고 그 때 했던 일들을 선배로 부터 배우고 터득하고 익혔다. 선배는 단어 그대로의 의미로 '칼같은' 사람이었다. '일하는 기계'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끝없이 일거리를 찾았고, 한번 시작한 일은 잘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꼿꼿이 서있었다.

선배 옆에서 일을 배우며, 꼼꼼하게 일처리를 하는 방법, 일단 시작한 일을 어떤 일이 있어서 잘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어떤 법칙과도 같은 'KC LEE's Way'를 알게 모르게 익혔다. 그리고 그런 배움은 내가 회사를 창업하고 프로젝트를 완수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단점은 있었고, 시련도 있었다. 내가 가장 심각하게 느꼈던 선배의 단점은 일을 하면 도대체 먹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 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나는 예전부터도 밥때가 되면, 밥을 먹어주지 않으면 에너지가 고갈되어 두뇌회전과 어휘 능력이 바닥을 치고, 기력이 쇠하여 모든 의욕을 잃게 되는 지병을 앓고 있었는데, 선배는 밥 때가 되어도 회의나 하던 일을 마무리 짓기 전에는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의외로 치명적인 단점이 되기도 했다. 적어도 때맞춰 밥먹는 일에 목숨을 거는 내게는 말이다.

한국일보를 끝으로 나는 이규창 선배의 그늘을 벗어나(?) 혼자 사업이란걸 시작하게 되었고, 한국일보를 나보다 앞서 그만둔 선배는 광고회사를 지인들과 창업해, 또다른 성공신화를 쌓기도 했고, 소프트웨어 유통사를 설립, 전도양양한 사업가로 변신을 했다. 그러나 인터넷 버블이 붕괴되면서 사업은 실패를 했고 실패를 딛고 자신의 길을 찾아 지금은 국내 굵직한 기업들의 경영진에게 '코칭'을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내 인생의 멘토인 이규창 선배에게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멘토링'이라는 직업에 대해 만족하는지 물었다. 선배는 코칭을 처음 배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했다. 

이규창: 나는 사실 예전부터 일을 하면서도 내가 뭘하면 기쁨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었지. 일을 열심히하고 성취를 위해 남다른 열정을 쏟았던 것도 바로 그런 원인이었던 것 같아. 그런데, 사실 이전에는 살아가면서 딱히 기쁨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같아. 뭔가를 이루면 반짝하고 기쁘기는 했지만, 그 자리는 곧 또 다른 성취 목표가 차고 들어와 기쁨을 희석시키곤 했지. 물론 슬픔을 느껴본 적도 없어. 눈물을 흘려본 기억도 없었고. 오직 열심히 남들보다 2배이상 노력했던 내가 좌절을 겪을 때면 분노만 머리속을 메우곤 했었지. 
그러다가 2005년 봄. 첫번째 코칭 워크샵에서 코칭을 배울때였어. 그 때 나는 어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소리내어 울었던 기억이 나..

무엇이 선배를 울게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규창: 지난날 내가 왜 기쁘지 못하고, 심지어 슬프지도 못한채 나락에 빠져 허우적 거렸는지를 한순간에 깨달은 느낌이랄까.. 지난날 내가 살았던 삶에 대한 연민과 이제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때문이었지.. 이제까지 내가 남들이 정해준 기준에 따라 사람들을 흔들고, 수단화 시켜서 남들에게 멋져 보이는 자신이 되기 위해 체력과 감정과 두뇌활동과 모든 것을 헛되이 썼다는 생각이 들었었지. 

코칭 수업을 들으면서 한순간에 '득도'를 하였다는 말이 신기하기도 하여, 도대체 코칭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규창: 내가 생각하는 코칭은 '변화를 일구어 내는 모든 것 (all about change)'이라고 생각해. 물론 긍정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겠지. 혹은 코칭이란 'enabling art'라고도 정의를 하지. 무언가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 혹은 비법이랄까.. 그런데 사람이 변화하고 지속적으로 의미있는 무엇인가를 일구어 낼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언제 기쁠까?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재능을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수 있어. 사람들의 재능은 가꾸어지는 것이라기 보다는 타고 태어나는 것이거든. 누구나 자기가 잘하는, 관심가는 일을 할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지. 

사실 자기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들릴 만큼 쉬운 얘기가 아니던가.. 그래서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이규창: 사람들의 눈은 외부를 향하지. 나 아닌 주위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나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는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살아가게 되는 거지. 유독 유명 대학, 학벌, 고시에 집착하는 우리나라의 문화도 다 그런 맥락이 아닐까 싶어. 그저 막연하게 객관적으로 정의된 '성공'이 나의 기쁨과 행복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애써 믿으며 살지만, 자기 자신 안에 내재된 본능과 재능이 그런 방향과 전혀 다른 사람들도 많은 법이지. 그러다 보면 '행복하다'고 막연히 믿었던 것이 약간의 시련만 닥치더라도 우수수 무너져 버리고 갈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는 거지. 

결국 스스로의 내부에서 동인이 생기지 않는 움직임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뜻인듯 싶었다. 여기서 다시 선배가 하는 '코칭'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규창: 코칭이란건 결국, 거울의 각도를 잘 비추어서 상대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내면을 바로 보게 하고, 스스로 깨달아 자신의 길을 찾도록 해주는 일이지. 지난 5년동안 이 일을 하면서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내면에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의 몸안에, 혹은 마음속에 내지된 재능을 발견하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게 해주는 일이 나에게 다시 없는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 그러니 일이 즐겁고, 마음이 편안해 지더라고. 

코칭을 통해 사람들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던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달라고 했더니 의외로 딸 이야기를 꺼냈다. 

이규창: 우리 딸내미가 프랑스에서 공부하는데 파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말하자면 과학고 같은 곳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학교 생활에 잘 적응을 못하는 거야. 떨어져 있으니 아버지로서 안타깝기도 해서 어느날 화상채팅으로 딸과 오래 대화를 나누게 되었지. 그러면서 내가 계속 질문을 던지고 딸아이의 표정을 보니, 사실 그 아이는 그 학교가 맞지 않았던 거야. 그 아이의 재능은 다른 쪽에 있었던 거지. 파리에서 유명한 고등학교라고 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가는 성취의 기쁨은 맛보았지만 자신의 내재된 재능과 다르니 계속 충돌을 하는 것이었지. 재미있는 건, 이 아이가 코칭에 재능이 있더라고. 사람들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난 거지. 결국 우리 딸은 지금 학교를 전학하고, 자신의 진로를 바꾸려고 하고 있어. 아버지가 코칭으로 딸의 재능을 끄집어 낸거지! 


Epilogue
저는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소홀히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외치는 소리에 귀기울이는 일이라구요. 자신은 그저 죽을때까지 존재하니 상대적으로 중요성을 모르는 걸까요? 어쩌면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방법에 대해서 한번도 배워 본 적이 없어서 남의 소리로 빗대어 내 목소리인양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오랫만에 이규창 선배를 만나 수다를 떨면서, 선배의 '코칭론'을 들으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 그리고 남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오늘은 모두 숨죽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 보아요.


이지선과 사람들 l 2010/06/14 19:19

Prologue
사회생활 시작한지 23년 하고 5개월째입니다. 적고보니 저조차도 놀랄만큼 오래 되었네요. 첫직장이었던 보험회사에서의 1년 7개월을 제외하고는 늘 사람을 만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 외향적인 성격은 못되었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과 잘 지내기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가 성장하는데 영양을 주고 용기를 주고 힘을 주었습니다. 늘 저도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으면 했었죠. 

문득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배운 것들을 정리해보고 싶어 블로그 인터뷰를 기획했습니다. 첫번째 인물은 저희 회사의 막내로 일하고 있는 정민서양과 유동현군입니다. 어려서는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대학때는 취업 노이로제를 피할 수 없었던 그들이 꿈과 희망을 찾아나가는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정민서씨는 지난해 12월에 인턴으로 미디어유에 입사해서, 올해 5월부터 정식 입사한 '오래된' 신입사원이다. 호서대 디지털 비즈니스 학부에서 컨텐츠 비즈니스를 전공했다. 1남 3녀의 둘째로 요즘으로 따지면 '대가족'에서 자랐기 때문에 늘 사람들과 부대끼고 함께 적응하는데 익숙했다. 그 덕에 어떤 그룹에 속하게 되던지 대인관계 면에서 적응을 잘하는 것이 본인의 가장 커다란 강점이라고 말했다. 

민서씨는 어릴때는 워낙 아이들을 좋아해서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고등학교 때는 사진작가를 꿈 꾸었다. 사진을 찍으면 여기 저기 여행을 다닐 수 있을 것같아서라고 했다. 그런 막연한 꿈을 잠재우고 대학 선택은 나름 평범한 경영학과를 가려 했다. 그러나 '뭔가 조금은 특화된 것을 배워보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디지털 비즈니스 학부를 선택했다고 했다.

유동현씨는 주말이면
앞치마를 두르고 할머니와 누나들을 위해 직접
밥을 준비하는 '요즘 보기드문' 청년이다. 얼굴에 써있는 것처럼 호기심이 많고 한번 관심 갖는 것에는 일단 몰두하는 성격이다. 초등학교때 쥬라기 공원을 보고 고고학자가 되고 싶어서 학교 운동장 흙을 모두 파헤쳐 보기도 했었다. 중학교때는 집에서 비디오방을 운영했기 때문에 학교 끝나면 하루 2-3편씩 영화를 봤다고 했다. 그 영향으로 한때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런 어릴 적 꿈은 커가면서는 색이 바래지게 마련.

동현씨가  자신의 미래 방향을 잡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고등학생이니 자신이 다 큰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아버지가 보시는 매일경제신문을 따라 읽었다. 처음에는 뜻도 모르는 얘기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지속적으로 경제 신문을 읽으니 자연스레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본인의 진로로 호서대 디지털 비즈니스 학부 벤처 전공을 선택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민서씨와 동현씨는 스스로 자신들이 고단한 세대임을 인정한다. 늘 무언가 경쟁적인 목표를 위해 뛰도록 강요받았고 그 압박은 끝이 없어 보였다. 학교다닐땐 진학 문제로, 대학 내내 자신의 진로를 정하는 것이 또다른 벽처럼 그들 앞에 그늘을 드리웠다. 

민서: 진로를 찾는 것은 대학 내내 퍼즐처럼 풀기 힘든 숙제였어요. 저는 학교 다닐때부터 '창의력'을 요하는 수업은 잘 못따라간다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에 한때는 남들처럼 '자격증'시험 공부를 할까도 생각 했었죠. 특히 3학년 마치고 캐나다 어학연수를 갔다가 2008년 말에 돌아 왔는데 경제여건도 너무나 안좋다고 하고, 솔직히 4학년을 맞는다는게 너무 두려웠어요. 4학년을 마치면 어떻게든 취업을 해야하는게 자신도 없었구요... 

동현: 저는 3학년까지는 진로에 대해 큰 고민없이 지냈는데, 4학년때 갑자기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져서 400만원이나 하는 한학기 등록금 댈 일이 걱정이었어요. 등록금이며 생활비며 아르바이트를 해서는 도저히 충당이 안되더라구요. 갑자기 살아가는 것에 대한 걱정이 커지니 솔직히 졸업 이후의 거창한 꿈을 꿀 의지 조차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졸업후 취업률도 대단히 낮아졌구요.  솔직히 졸업하는 친구들은 대기업 중심으로 취업을 원하는데 우리는 지방대 컴플렉스도 있고, 토익같은 영어 점수도 중요해 더더욱 확률상으로 어려워 지는 거죠.   

답에 이어 친구들이 왜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을 가고 싶어 하는지 물었다.

동현: 글쎄요.. 제 생각에는 집안 부모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부모님들은 친구분들과 만나면 자식 자랑밖에 할게 없는데 어느 한 분이 '우리 아들은 어디 어디(유명한 대기업) 다니고 월급은 얼마를 받는다'라고 하면 자연스레 어머니들은 '우리 애는...' 하며 주눅이 드신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부모님 말씀이 자연스레 압박이 되니까, 다른 생각 별로 안하고 그냥 대기업 시험을 보는 거죠. 

민서씨와 동현씨의 친구들이 4학년의 취업 공포증을 피하기 위해 선택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대학원 진학이라고 했다. 소위 얘기하는 '가방끈'을 늘려 놓으면 조금은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반, 당장 취업 고민에서 벗어나고픈 소망 반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어쨌든 정민서씨와 유동현씨는 이땅의 대학생들의 빼놓을 수 없는 걱정거리인 '취업'의 관문을 뚫었다. 비결은 남들이 다 가는 길을 피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회의 정형화된 기준에서 누구나 열망하는 '대기업'을 소원하지도 않았고 두렵기는 했지만 대학원 진학 등으로 도피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대학원 진학하는 사람들을 취업 공포증에 대한 도피로 일방적으로 몰아 부치는 것은 아니니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나름 힘든 인턴 자리에서 열심히 배우며 얻어낸 자리였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학교를 벗어나 사회에 나와 일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물어 보았다. 

민서: 학교에서는 항상 실제 현장에서 도움이 되는 실무 위주의 교육을 시킨다고 늘 강조를 했는데, 역시 학교와 현장은 다르다고 절실히 느꼈어요. 4년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회사에 와서 5개월 일한 것이 훨씬 많은 공부가 되었고, 무엇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 내가 현장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오늘 하나를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SNS, 블로그 쪽은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공부를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구요.. 오히려 그래서 더 긴장하고 닥치는대로 부딪쳐 보기에 좋은 것 같아요.

동현: 회사 오기 전에도 네이버 블로그도 운영해보고 트위터도 계정을 열어 보았는데, 그렇게 별 생각없이 운영하던 때랑 일로 대하니가 훨씬 더 진지해지고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어서 너무나 좋은 것 같아요. 또 일을 하면서 피드백을 받고 때로 칭찬도 받으면 그런 것들이 다시 저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가 되는 것같구요..
 블로그 자체를 바라보는 눈도 달라지게 되고 무엇보다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고 싶어져서 얼마전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개설했는데 예전에는 쉽게 쓰던 블로그 포스트를 거듭 거듭 고민하며 쓰게 되더라구요. 그만큼 스스로 '눈높이'가 높아진 거죠. 그래서 12시 넘겨 블로그 글을 완성을 하고는 내가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뿌듯했어요. 

이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해나가는 방법은 사실 단순했다. 두렵지만 한번 부딪쳐 보는 것! 친구들이 대기업을 열망하지만, 정말로 본인 스스로가 대기업에 가고 싶은 것인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동료들에게 보내는 조언이었다. 때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모를 때가 있는데, 부모님에게서, 혹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서 답을 구하지 말고 스스로 직접 해보면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조금은 촌스럽지만 주먹쥐고 "화이팅!"을 외치며 각자가 가진 꿈을 얘기해보기로 했다.

민서: 지금은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 더 열심히 배워 보려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시간을 내어 배낭여행으로 세계를 둘러보았으면 좋겠어요! 

동현: 저는 SNS,  블로그 미디어의 무한한 가능성을 느낍니다. 이쪽 분야에서 인지도를 쌓아서 국내외를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Epilogue
제가 두번째 직장인 전자신문에 입사한 것은 1988년 가을의 일이었습니다. 스물다섯이었죠. 제가 전자신문에 가겠다고 했을때 주위 사람들이 기왕 기자를 하려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나 일간지를 가라며 저를 만류하기도 했습니다. 나름 순둥이로 자랐던 제가 처음 고집을 피워 전자신문을 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 인생에서 가장 잘 한 결정중에 하나라고 믿고 있습니다. 

전자신문에서 열심히 사람들 만나며 기자로서의 일들도 배웠고,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파업도 해보았고, 책 번역도 했었고, 동료들과 지리산 청왕봉 종주도 했습니다. 그 때의 저는 작은 눈을 반짝 거리며 뭔가 재밌어 보일 만할 일들을 찾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 첫걸음을 내딛는 민서와 동현을 인터뷰 하면서, 저는 다시 이십여년 전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때의 반짝 거리는 눈망울을 지금 제 안에 찾을 수 있다면, 때로 일상에서 지치는 일따위는 없을텐데 말입니다. 

오늘 살아가는 일이 힘들다고 느끼신다면 주변에서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는 젊은 친구와 밥한끼, 차한잔 나누며 대화를 나누시길 권합니다.
 
이지선과 사람들 l 2010/05/27 18:36

세상에는 두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블로그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트위터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내일을 믿는 사람과 오늘에 허덕이는 사람,
....

우스개 소리로, 혹은 아주 저절로 우리는 늘 세상을 두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본다.

얼마전 한 선배와의 저녁 자리에서, 다른 이야기 끝에, 강릉이나 속초에 점심으로 손두부나 회를 먹으러 다녀온다는 얘기를 들으며 살짝 어이없어서 웃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또 며칠후 우연히 '방송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우리는 아침에 기분 내키면 점심 먹으러 훌쩍 속초 가잖아!" 라며 당연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났다.

문득 세상에는 두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초를 최소 1박 2일의 여행지로 생각하는 나같은 류의 사람과, 훌쩍 평일에도 점심 먹으러 속초에 다녀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말이다.

대체로 창조나 혁신은 후자의 사람에게서 이루어진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상식적이지 않은 발상을 잘도 했던것 같았는데 요즘 들어서는 너무 세상을 평범하게만 바라 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상, 나는 뭔가 새롭고, 진부하지 않아서, 재미있을 것같아 보이는 일에 관심을 보이고 그런 일들에 흥미를 느끼고 했었던 것같은데 말이다. 

이제 붕붕 떠다닐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발걸음을 가볍게 할 정도의 "깨는 상상"은 필요할 것같다.

늦은밤, 일에 집중하지 못하면, 묵은 고민들은 저마다 고개를 쳐들고 내 귓전에 떠들어 댄다. 지금은 내 앞의 자판에 집중할때...!
이지선과 사람들 l 2010/05/23 00:47

블로그를 시작한지 꽤 여러날이 흘렀습니다. 만으로도 삼년이 훌쩍 넘은 듯합니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땐 늘 머리속에 블로그에 담을 글감을 생각하고 고민하며 보냈고 밤 늦도록 글을 쓰고, 또 다른 친구의 글을 읽는데 잠자는 시간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의 애틋함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결코 블로그를 떠나서는 살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블로그에 담을 마음과 생각과 경험을 가다듬으며, 그것이 제 삶을 되돌아보고 내다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같습니다. 

블로그에는 미디어유와 블로그코리아를 운영하면서 느꼈던 온갖 어려움과 땀과 또 나와 함께하는 미디어유 식구들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고마운 가족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고 친구들과 함께 했던 즐거운 수다도 배어 있습니다. 제 삶이 담겨있고 그 무게를 그래도 낑낑거리면서 버텨내려 했던 노력도 채워져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매 순간 순간 느끼는 감정들, 살면서 배우는 지혜들, 세상의 이치들을 채곡채곡 접어 사랑하는 이에게 연애편지를 쓰듯이 정성을 담아 메꾸어 가겠습니다. 

나이가 들면 욕심부려 많은 것을 성취하는 것보다는 주변을 잘 정돈하며 담담하게, 정갈하게 살고 싶다는, 아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문득, 어쩌면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블로그하고 트위터하고 미투하며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삶의 기록인 블로그를 조금 이쁘게, 정돈되게 꾸며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난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제 블로그의 '시즌2'를 시작합니다. 블로그명도 "이지선의 연애편지"라고 새롭게 지어 보았습니다. 삶을 소중히 생각하고 일을 사랑하며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마치 연애편지를 쓰듯이. 곱게 푸근하게 읽어주는 당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지선과 사람들 l 2010/04/16 01:06

경력 요약

* Media/Communication Specialist
1988년부터 전자신문, 조선일보, 한국일보를 거치며 기자를 했습니다. 웹2.0의 흐름이 주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깨닫고 블로그 기반의 메타 서비스 블로그코리아를 기획,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자 경험을 바탕으로 홍보/기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일했으며 블로그, 메타 블로그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미디어2.0 시대에 맞는 2.0 커뮤니케이션 교육/컨설팅을 주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2.0은 단순히 새로운 툴의 등장과 접목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많은 대화 나누고 싶습니다.

* Entrepreneur
8년간의 기자생활 끝에 1996년 말리는 선배들을 뒤로하고 신문사를 그만뒀습니다. 서른 둘의 어린 나이에 (주)드림커뮤니케이션즈를 설립했습니다. 죽도록 일하는 맛을 배웠고, 사람보는 눈을 키웠습니다. 좀 더 멋지고 당당한 CEO가 되고 싶어 서른 일곱에 유학의 길에 올랐습니다. USC에서 MBA를 공부하고 그 곳에서 모바일 컨텐츠 사업이라는 두번째 무모한 도전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2007년 2월 28일에 세번째 도전으로 (주)미디어유를 설립했습니다. 허허벌판에 길을 내고 집을 짓는 마음으로 커뮤니케이션2.0 시장을 일구어가고 있습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는 번역서를 몇권 냈습니다. '빌게이츠 훔치기', '디지털머니' 등의 제목이었죠. 

2009년에 처음으로 역서가 아니라 제가 지은 책 <블로그 만들기> (동아일보사)를 냈습니다. 블로그에 관심은 있으나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초보 블로거 안내서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많은 격려를 해주신 책입니다.

앞으로도 제가 하는 일 열심히 하며 시간 닿는대로 책으로 엮어볼 생각입니다만,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많이 응원해 주세요.

이력사항
2007. 02  (주)미디어유 설립, 대표이사
2006. 08 ~ 2007. 01  (주)프레인 사장
2004. 01  Mtogo, Inc. (LA, CA/USA) Founder & CEO
1996. 12 ~ 2002. 06 (주)드림 커뮤니케이션즈 설립, 대표이사
1988 ~ 1996   전자신문, 조선일보, 한국일보 IT 담당 기자

학력
Marshall School of Business, USC - MBA Class of 2004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87)

연락처
easysun@mediau.net
www.twitter.com/easysun
http://me2day.net/jisundream
http://www.mediau.net 
(주)미디어유 02-3443-2470









이지선과 사람들 l 2010/04/15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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