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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가족'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9/18 결손가정에서 살아가기... (14)
  2. 2009/05/05 기러기 가족의 5월 (12)
  3. 2008/03/28 기러기 가족에 합류합니다. (16)
며칠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선배(A씨)와,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나의 선배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과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지인(B씨)과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편하게 수다떠는 자리였는데 얘기를 나누다보니 우리 셋 모두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이른바 '결손가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떨어져 살아가는 것의 고단함을 주제로 한참 대화의 꼬리를 이어 갔는데, 그날 얘기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실명을 짐작하기 어렵게 하기 위해 아주 '약간' 각색을 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등장인물 A씨는 남매를 유학시키고 있었고 부인도 아이들 돌보느라 떨어져 살게 된지 6년이 되었고 B씨는 외국에서 공부하는 아내를 뒷바라지 하면서 딸 둘을 함께 보낸지 3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업무상 LA 가있는 남편과 떨어져 살게 된 것이 1.5년이네요.

먼저 A씨의 사연입니다.

이번 여름방학에 말이다 근 6개월도 넘게 못보다가 애들과 엄마가 서울에 오게 되었어. 그래서 나는 한달전부터 몸과 마음을 모두 환영준비에 쏟아 부었지. 오면 이걸 할까, 저걸 할까 고민도 많이 했고, 돈도 좀 꼬불쳐 두고 늘 설레이며 만날날을 고대하고 있었지.

그런데 정작, 방학을 해서 애들과 애들 엄마를 공항에서 맞이 했는데, 우리 아들눔은 짐만 차에 싣고는 머리하기 위해 이대앞을 가야한다는 거였어. 첫날부터 나는 뒷전이더니 서울에 머무르는 내내 온갖 친구들 약속에 바빴지. 딸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히는 건, 우리 마눌님이었단다.

애들이야 뭐 어느 정도 예상도 했고 이해도 했지만 (이눔의) 마눌님도 아침 꼭두 새벽부터 기도한다고 나가서는 12시나 돼야 나타나는 거야. 사실 나는, 가족들 온다고 휴가도 받아 놨는데 정작 식구들은 다들 나가서 노느라고 나는 휴가 내내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집에서 빈둥빈둥, 낮잠만 잤던 거야.. OTL

그렇다고 가장이 쫀쫀하게 나랑 놀아 달라는 둥 어찌 그런말을 하겠냐. 그래서 참고만 있다가 어느날 드디어 폭발을 했다. 딸, 아들, 마눌님 다 불러 앉혀놓고 징징대기 시작한거지. "니들 정말 너무한다. 몇달만에 겨우 우리 가족이 만났는데 다들 초등학교부터 동창들 찾아 다니기 바쁘고 아빠와는 정작 얼굴 마주치기 어려웠잖니..." 애들은 잠시 숙연한 표정을 짓더구나..

"그리고 당신, 정말 너무하는거 아냐. 언제 한번 내 밥 한끼 챙겨준 적이 있냐고.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지난 중복날.. 나 회사 사람들이 삼계탕 먹으러 가자는 걸.. 당신이 그래도 저녁에 들어가면 닭한마리 고아놨겠지 싶어.. 회사 사람들 다 설득해서 짜장면 먹었어. 그런데 집에 와보니 웬걸.. 당신은 밤늦도록 들어오지도 않고... 나 저녁으로 뭐먹었는지 알아? 짜파게티 끓여 먹었다!" 우리 마눌님 뭐라는지 아냐? "그래? 난 삼계탕 먹었는데 >.<" ....

결국 그날 내가 가족회의 소집해서 남은 이틀동안 다들 약속 취소하고 가족 외식 4번하고 보냈지. 가장이 좀 폼잡아 가며 잘해주고 싶었는데.. 구걸을 한 셈이 된거야.. ㅠㅠ
 
와 정말 눈물나도록 슬픈 얘기였습니다. 이에 3년차 B씨도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저도 비슷한데요. 부인이 방학을 맞아서 애들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멋진 남편으로 보이고 싶어서 제가 봉투를 준비했죠. 봉투에 일금(=거금) 백만원을 딱 넣고 - 그거 모으느라 정말 힘들었죠 ㅠㅠ - 손에 쥐어 주면서 "당신 있는 동안 써!" 근엄하게 한마디 했습니다. 그리곤 카드도 건넸죠. "모자라면 카드도 있고!" 아 정말, 뿌듯한 순간이었죠.

그런데 다음날 부인이 봉투를 들고 콧노래 부르면서 나갔는데.. 저녁에 들어와 보니 머리 스타일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당신, 머리 했네!" 그러면서 아는 척을 했더니.. 강남 어디에서 하느라고 45만원을 썼다는 겁니다! 허걱! 순간 어렵게 알바뛰고 온갖 노력 다해서 마련해준 펀드가 반토막이 났다고 생각하니 정말 허탈하더라구요. 

사실 카드는 남편으로서의 허세 부리려고 준것이었는데 며칠 안돼 바로 카드 사용 들어가더군요. 카드값 갚느라 한동안 힘들었습니다. 에효~! 

다들 아픔이 있는 거죠. 떨어져 사는 애틋함도 모자라서 비용도, 많이 드는게 결손가정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결손가정에서 살다보면 혼자서 넓은 침대를 차지 하다보니 잠버릇이 고약해진다는게 그날의 또다른 결론이었는데요..

B씨: 저는 3년쯤 되니까 허전한가봐요. 창피한 얘기지만 요즘은 베개같은 거를 끌어안고 자게 되더라구요..

A씨: 그것도 몇년지나면 시들해져. 나는 첨에는 이불을 돌돌 말고 자다가 지금은 이불이고 베개도 다 내동댕이 쳐서 일어나보면 다 침대 밖으로 떨어져 있더라고..

나: 오라버니드을~! '가로본능'을 아세요? 전 침대에서 가로로 잡니다. -_- (물론 제 신체 조건이 그러하니 가능한 일이지만요..)

흑.. 결손가정 후원회라도 만들어야 겠어요..

A씨와 B씨가 이 글을 읽더라도 그날 대화내용의 무단게재를 문제삼지 말아주시기를... 그냥 웃자고 쓴 글이니까요^^


 
와인과 치즈 l 2009/09/18 16:26

어린이날, 어버이날 - 유독 가족 행사가 많은 5월. 그래서 우리는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른다. 남편이 업무로 인해 LA로 떠난지 1년, 어린이날에 둘째와 나만 남았다. 이름이 붙은 날에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웬지 오늘은 기러기 가족의 서운함이 느껴졌다.

열살을 넘어서면서 아이들은 더 이상 엄마, 아빠의 외출을 따라다니지 않게 된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그렇다. 친구가 더 좋거나 혹은 TV나 게임이 훨씬 더 아이들을 웃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민창이는 사내아이로는 자상한 편이기는 하지만, 예외는 아니었다. 이제는 선물을 사준다고 해도 나를 따라 쇼핑가는 것을 숙제하는 것 이상 귀찮은 일로 여기는 눈치다. 고등학생이 된 큰 아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린이날은 휴일일 뿐이고, 휴일은 공부를 핑계삼아 여자친구를 만나는 날인 듯하다. 엄마와의 대화는 '용돈'이 필요할 때 뿐이고...

그래도 어린이날을 그냥 보내기는 섭섭해서 민창이를 데리고, 점심을 먹으러 갔었는데, 문득, 이제 아이들이 서서히 내 곁을 떠나고 있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서는 것같았다. 물론 줄곧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제까지는 그저 막연한 생각이었다면, 오늘은 바로 눈 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내년이면 둘째마저 '초등학생'을 벗어나고, 어린이날 선물사달라고 조를 일도 없겠다 싶다.

내 편에서 보자면 아들들이 내 주변에서 재잘 거리며 함께 수다 떨어주지 않는게 섭섭할지 모르지만, 달리 생각하자면, 이제 서서히 독립된 성인이 되려는 준비를 하는 것이니, 오히려 대견하다고 생각해야할 것도 같다. 오늘 유독, 어린이날 섭섭함을 느꼈던 것은, 아빠가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억지로 민창이와 사진 한컷!


와인과 치즈 l 2009/05/05 15:44

오늘 오전에 남편과의 통화(주중에는 서로 바쁜 일정으로 얼굴 마주하기 힘든지라 전화를 자주하는 편이죠 -_-)는 출국 일자를 잡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이제 한달 정도 후면 기러기 가족에 합류한다 생각하니, 제법 마음이 심난하더군요.

얼마전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서 해외 지사로 발령이 나서 조만간 LA로 떠납니다. 처음 발령을 받았을때는 어떻게 이 사태(?)를 정돈해야할지 고민도 많았었죠. 사실 우리 가족은 오랜 '기러기 가족'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모여 산지 얼마 안되었습니다.

제가 삼십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유학을 가겠다고 고집을 피워 LA로 떠났던 것이 2002년. 당시에는 공부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애들을 데리고 있을 엄두도 못내었고, 회사에 메인 몸인 남편은 어쩔수 없이 서울에 남아 있어야 했으므로 저는 LA에, 가족들은 서울에 있는 처지가 되었죠.

그러다가 남편이 운좋게 연수 기회를 얻어 애들과 함께 LA로 와서 일년 좀 넘는 기간동안 다시 뭉쳐 지내게 되었고, 연수 기간 끝나고 남편과 애들이 먼저 서울로 돌아오고, 저는 남아서 벌여놓았던 사업 정리하고 돌아와서 이제 '급기야' 정착이 되었던 것이지요.

제가 돌아온 것이 2006년이니 불과 2년만에 다시 '가족 구성원의 재배치'(?)에 대한 이슈가 생긴 것입니다. 가족회의 끝에 저는 미디어U에 남아 블로고스피어를 지켜야(?!)하기에 일단은 남편 혼자 LA로 떠나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보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다니는 둘째는 내년쯤 보내는 것이목표이죠.
 
'기러기 아빠/엄마'에 대한 얘기들은 더 이상 새로운 이슈가 아닐 만큼 흔한 것이 되었지만 막상, 내일이 되고 보니 마음이 심난하네요. 신문기사를 읽다보니 기러기 아빠가 수십만명에 달한다고도 합니다. 앞으로는 기러기 가족의 문제를 몸소 느끼게 될 것같습니다.

그런데 왜, 떨어져 사는 가족을 '기러기 아빠'라고 할까요? 물론 요즘은 독수리 아빠, 펭귄 아빠등등으로 분화가 되는 듯도 하지만 기러기가 대표 명이 된 연유가 갑자기 궁금하네요. 기러기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서글퍼 보여서 그럴까요? 아무래도 블코채널에 기러기 가족 채널하나 만들어야 할까 봅니다. 기러기로 잘 버텨내는 법을 함께 나눠야 할 것 같아요. 이 세상 모든 기러기 가족들과 함께 외치고 싶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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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엠파스 백과사전>




와인과 치즈 l 2008/03/2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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