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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31 CEO 증후군과 귀담아 듣기 (16)
3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대표이사의 타이틀을 갖게된 나는 한동안 'CEO증후군'에 시달린 적이 있었음을 고백해야겠다. CEO증후군이라는 증세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나는 나를 한때 괴롭혔던 그 증상을 그렇게 부르고 싶다.
 
언제부턴가 회사의 대표자를 '사장'으로 부르는 대신 'CEO'라는 용어가 등장을 했다.  90년대 후반 미국으로부터 건너온 "벤처" 열풍의 한 단면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Chief Executive Office, 최고 경영자라는 이 표현은, 기업을 대표해서 전면에 나서 모든 것을 챙기는 "대표"의 의미에 무언가 모를 '플러스 알파'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CEO와 함께 갑자기 인기를 모았던 단어 가운데는 '비전(Vision)'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굳이 해석하자면 '기업이 앞으로 나아갈 미래 사업 방향'이라고 할수 있을, 실체도 보이지 않는, 이 비전에 대해 사람들은 훨씬 중점을 두었다. 지금 그 기업이 매출이 얼마고 순익이 얼마인가 보다, '비전'이 있는가 없는가하는 것이 더 중요한 포인트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90년대 후반에는 CEO의 직무를 정의해 보자면, 하루 하루 영업 실적을 챙기는 역할 보다도 오히려 앞으로의 기업이 가진 전망, 즉 비전을 만들어내는 일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소위 Visionary를 원했던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애플 컴퓨터의 "스티브 잡스"처럼 비저너리로서의 CEO 브랜드가 인기를 모으면서 모두들 사장에게 CEO가 되기를, Visionary가 되기를 은연중에 강요했다. 아니, 강요했다기 보다 그 당시 나는 그런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었다. 과연 나는 회사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회사가 개척해야할 미래를 정확히 짚어 내어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설파"하고 납득시키고, 이해시키고, 나아가 감동시키고, 이끌어갈 수 있는 재목이 되는지 말이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도대체 우리 회사의 비전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도 명확치 않은 그 비전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할 수 있는지.

그것이 내가 고민했던 'CEO 증후군'의 실체였던 것같다. 그 안개속을 헤매는 듯한 불안정함이 싫어서 '늦깍이 유학'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창업3.0에 접어들어 나는 세번째 CEO라는 타이틀의 명함을 가지게 되었는데 사업이 잘되건 못되건 간에 지금은 예전에 가졌던 CEO 증후군의 증상들이 한결 누그러들었다. 어쩌면 CEO의 역할의 기대치가 달라진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CEO란 단어 자체가 예전처럼 그렇게 팬시하지도 않고, 역할에 있어서도 비저너리로서의 역할 보다는 오히려 '리더쉽'에 더 초점을 많이 맞춘듯하다. 앉아서 천리를 내다보는 비정상적으로(?) 똑똑한 경영자이기 보다는 사람들을 잘 이끌고 화합해서 기업의 목표를 명확히 정의하고 차근히 이뤄내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얼마전 오래 알고 지내던 투자사의 CEO를 만났다. 그 분은 "요즘 하는 일의 절반 이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는데, 새삼 수긍이 되었다. 조직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것, 혹은 고객들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것이 정말로 CEO가 해야하는 기본적인 임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세상은 갈수록 분화 되면서 폭넓은 시각을 요구한다. 누구 한사람의 혜안을 가진 비저너리가 풀어내기에는 너무나 변수가 많다. 많은 사람의 시각, 의견을 종합한 성실하고 지혜로운 '판단과 결정'이 더욱 중요한 것같다.  

그래서 나는 요즘 더욱 "귀담아 듣기"에 열중한다. 시기 적절한 판단과 결정,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나의 몫이겠지만, 나는 더 이상 백리 앞을 보기 위해 짧은 목을 잔뜩 빼지 않아도 된다. 또 멋들어진 '비전' 대신, 신중한 예측과 선택 가능한 몇가지 행보들을 함께 나누면 된다. 무엇보다도 '뭐든지 다 알고, 똑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도 된다.
 
그 대신, 함께 나아가는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일을 함께 하면 된다. 겉이 번지르한 그럴듯한 '비전'은 종종 신기루 처럼 손에 잡히지도 않고 가슴에 오래 머물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절대 기업의 '비전'을 정의하고 공유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것이 조직원들의 현실과 인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야 하지, 미사여구로 완성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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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담아 듣기"가 중요하다. -사진출처: www.corante.com-






Posted by easy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