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넘겨 새로운 날을 맞았다.
오늘은 일년중 가장 큰 달이 뜬다는 대보름이다. 매년 대보름은 내 생일이다. 어렸을때 어른들은 '여자가 대보름에 태어났으니 팔자가 세겠다'며 말끝을 흐리셨다. 어찌됐건 조용히 집안에서 살림꾸리며 살고 있지 못하니 옛날 기준으로 하자면 팔자가 센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어려서 부터도 '팔자 세겠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듣기 싫지 않았다. 생일마다 보름달이 뜬다는 사실이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문득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림픽 대로를 달리면서 한강에 어리는 불빛들을 보고 있자니 몇년전 생일의 기억이 떠올랐다. 2003년 2월쯤 유학중에 맞는 첫 생일이었다. 2002년 7월에 가족들은 모두 서울에 두고 혼자서 유학길에 올랐던 나는 만학의 어려움 때문에 외로움이니 뭐 그런것을 느낄 겨를이 없었는데 정작 생일이 다가오니, 새삼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가 마음에 걸렸던지 우리 동기들 3명과 한학번 선배였던 김모 학형이 나를 위해 생일 파티를 마련해 주었다.
당시 김모씨는 롱비치 바닷가에 인접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평상시 요리 솜씨를 자랑하던 그는 자기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수업도 빠진채 음식을 마련했다는 사실에서 나를 포함한 우리 동기 4명은 모두 감격스러워 했는데, 오랫만에 모여 같이 밥먹고 술도 한잔 하니 참 유쾌한 생일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술 잔이 한잔씩 더해지면서 누구의 객기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왕언니 (유학시절 나는 클래스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서 왕언니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평생에 잊혀지지 않을 생일을 만들어 줘야 한다"면서 나를 롱비치 바닷가에 빠뜨리기로 했다. 밤바다 구경도 할겸 모두 함께 나가서, 정말로 그 롱비치 바닷물에 나를 집어 던졌다. (물론 실제로 던지지는 않았고, 왕언니의 감기를 염려하여 뒤에서 담뇨를 든 대기조도 있었다) 어쨌든 롱비치 바닷물에 빠져 태평양에 뜬 보름달을 보았는데, 어찌나 크고 밝던지... 아직도 그 달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강물을 보면서 롱비치를 떠올리다가 새삼, 생일날 자정을 사무실에서 일더미에 눌려 지냈다는 사실이 씁쓸해졌다. 생일에 무슨 대단한 의미를 두는 것도 아니면서 '이래서 팔자가 세다고 했던 모양'이라며 혼자말로 투덜대었다.
집에 와보니 남편이 꽃바구니를 배달시켜 놓았다. 이제까지 팔자타령이 한순간에 잊혀졌다. 후후.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꽃은 봐도 또 좋고, 생일 축하를 받는 일도 즐거운 일인듯하다.
잠자고 시작되는 아침에는 환한 달처럼 밝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드센 팔자에도 이제껏 잘 살아온 나를 위해, 선물이라도 준비해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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